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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년] “우리가 겪은 ‘피의 역사’ 기억하고 일 과거사 왜곡·은폐, 적극 알려야”

[인터뷰]  정혜경 박사 /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과장 

 

 

 

 

   일본은 지난 7월 일명 ‘군함도’로 알려진 조선인 강제노역 시설 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다시 한 번 전범(戰犯)의 역사를 교묘히 감췄다.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안내를 진행하겠다는 약속도 등재 하루 만에 뒤집었다.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 없이,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로 ‘민족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되새기는 일본은 이와 같은 소극적 역사왜곡에서 더 나아가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의 아베 정부는 평화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추구, 공격적인 군비 증강을 진행 중이다. 광복 70년임에도 동북아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군국주의 부활 조짐에 대해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 민족이 겪었던 피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피해자인 우리가 잊으면, 가해자인 일본은 기억할 필요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정혜경 박사는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70년이 흐른 지금 우리 젊은 장병들이 취해야 할 자세로 과거사를 ‘기억’하는 것을 꼽았다. 정 박사는 현재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서 일본이 계속해서 은폐하려 드는 조선인 강제노역의 증거를 모으고 이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日 강제노역 인정, 국제연합으로 감시해야

 지난 7월 5일(현지시간)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이 신청한 근대산업시설 23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시설 가운데 군함도를 포함한 7개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이 강제노역에 동원된 역사적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일본은 이 자리에서 최초로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안내센터 등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등재 직후 강제노동이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왜곡을 일삼는 퇴행한 역사의식을 여실히 드러낸 바 있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일본은 확고한 유네스코 등재 프로세스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1995년께부터 준비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벤트와 같이 만들어 민간의 적극적 동참과 관심을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보존성이 높은 건 사적지로 등록하죠. 그 이후 엄선된 것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에 출전시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히로시마 원폭돔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겪었기 때문에 역사를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는 명분을 걸고 이러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정 박사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일본이 보인 비겁한 행태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유네스코의 정당한 대응을 일본이 잘 따르게 하는 것이라 언급했다.

 “유네스코는 2018년에 일본이 강제노역시설에 대한 적정한 설명을 실제 했는지 경과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검증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중국과 호주, 영국, 미국, 네덜란드 등 일제에 의해 자국민이 강제노역을 했던 다른 국가들과 이 과정을 면밀히 감시함으로써 일본이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이의를 제기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원폭 피해자 시늉… 추악한 미화작업 계속 

 정 박사는 이번에 등재된 문화유산 가운데 강제노역 시설보다 더욱 나쁜 것이 조선 침략의 원흉으로 안중근 장군에게 척살 당한 ‘이토 히로부미’ 등 메이지 유신의 주역을 길러낸 학사 ‘쇼카손주쿠’라고 알려줬다.

 “일본 사람들도 자신들의 조상이 과거에 한 일을 잘 모릅니다. 강제동원의 역사를 세계 시민에게 알릴 홍보전략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8000개가 넘는 강제동원 시설과 현장이 있습니다. 이를 잘 복원하거나 표지판 설치, 인터랙티브한 설명시설 마련 등으로 진정한 역사를 알리고, 우리 후손들에 대한 역사교육도 강화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정 박사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추악한 과거사를 왜곡하는 과정은 1단계 봉인, 2단계 망각, 3단계 왜곡, 4단계 미화의 과정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일본은 항복 이후 바로 미국 할리우드의 제작진을 활용해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서양여성과 일본남성의 사랑이 원자폭탄으로 깨지는 영화를 만들어 세계에 배포하고, 피해자 흉내에 돌입합니다. 60년대 중반부터는 원폭피해자 회고록을 집중적으로 출판하는 등 원폭피해를 미화작업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현재도 일본은 군국주의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시설들을 공원화하거나, 관광지로 만들어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개방함으로써 전범 이미지를 희석해 가고 있다. 군함도 역시 과거 운항하는 배편이 1개였던 것이 이번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10여 개 이상 늘어나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이 걸어간 길, 일본도 걷게 해야 

 정 박사는 독일도 자발적으로 과거사를 참회하는 길을 걸은 것이 아니라는 역사적 배경을 언급했다.

 “이스라엘은 1953년 야드 바센이라는 정부기구를 만들었습니다. 강제노역과 유태인 학살에 대해 조사하는 기관으로, 그 이름의 뜻은 히브리어로 ‘기억하라’입니다. 이 기관은 2000년까지 47년 동안 굉장히 많은 자료를 축적한 뒤 독일에 소송을 제기합니다. 이에 독일 기업부터 나아가 국가와 국민까지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도 같은 노력을 통해 독일이 걸어간 길을 일본도 걷게 해야 합니다.”

 더불어 정 박사는 일본 내에서 행동하는 양심 있는 국민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위안부 강제동원이 실제로 있었다는 순회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또 60년대부터 자비로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해 조사하고 그 결과를 알리는 일본인들도 있습니다. 역사는 거울입니다. 지금 일본의 거울은 왜곡의 먼지가 가득 묻어 있는 상황입니다. 스스로 역사의 거울을 닦는 이들을 도와서 일본이 역사왜곡을 하지 않게 한다면, 우리도 일본과 함께 평화와 번영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정혜경 박사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일제강점기 재일한인 역사를 주제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일민족문제학회장을 맡고 있으며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에서 일제 말기 조선인 인력 동원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