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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65년...참전국 주한대사를 만나다 <4> 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

“전쟁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자원해 의료선 오른 그들…”

그 후 65년...참전국 주한대사를 만나다 <4> 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

 

 
“6·25는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달 12일 서울 용산구 주한 덴마크 대사관에서 기자와 만난 토마스 리만 대사(사진)가 말했다.  그의 조부 칼 리만은 1939년 소련과 핀란드의 ‘겨울전쟁’에서 의료활동을 펼쳤던 외과 전문의였다. “6·25 참전을 고심하던 덴마크 정부는 전쟁을 경험한 할아버지에게도 의견을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국에 의료선을 보내야 한다’고 답했고 실제로 유틀란디아호가 파견됐습니다.” 그리고 65년이 흐른 오늘, 손자 토마스 리만이 주한 대사로서 한국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가 유틀란디아호의 상징성과 양국의 발전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 파견…수많은 유엔군·민간인 치료


   “전쟁에 인도주의적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리만 대사가 사무실에 걸린 유틀란디아호 사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덴마크는 6·25 당시 의료선 유틀란디아호를 한국에 파견해 수많은 유엔군과 민간인을 치료했다.

배에 탄 의료진 대부분은 자원자였다. 그는 “덴마크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당했다”며

“전쟁의 아픔을 알기에 많은 덴마크인이 자진해서 배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또한 6·25 전쟁에 대해서는 “너무도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슬픈 사건이며 참혹한 전쟁”이라고

표현하며 “슬픈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며, 참전용사를 반드시 추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마스 리만은 주한 대사이자 주북한 대사다. 주한 대사 가운데 남북 대사를 겸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덴마크는 최근 한반도 정세의 종합적 이해를 위해 남북 대사 겸임을 선택했다.

부임 후 첫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한 리만 대사는 남북의 차이점에 대해 놀라움을 전했다.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한국과) 전혀 다른 나라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같은 민족임에도

정치체계에 따라 행동, 어휘, 분위기, 삶의 페이스(pace) 등이 달라진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이어 한반도 안보정세와 북핵에 대한 염려의 말을 전했다. “덴마크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바라며

핵에 반대합니다. 북핵은 평화 유지에 있어 완전히 잘못된 방법이며,

한반도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위협입니다.”

 

 

군복무는 영광…韓 보훈 활동에 감사


 덴마크에는 6·25 전쟁 참전용사협회가 있다. 협회는 매년 유틀란디아호를 기리는 행사를 하고

주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리만 대사는 참전용사들에 대한 대한민국의 보훈 활동에 감사를 전했다. “6·25 참전용사들은 매우 고령으로 생존해 계신 분이 많지 않습니다. 이들은 참전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고 희생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특히 많은 한국인이 자신들을 기억해주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것에 감동하곤 합니다.”

 그는 올봄 국립중앙의료원 스칸디나비아 3국 기념홀 개관식에 참석했다.

“스칸디나비아 3국(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은 6·25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의료지원활동을 했습니다.

현재 한국 국립중앙의료원은 이들 3국의 협력으로 건설된 것이죠.

대한민국이 이러한 노력을 기억해주는 것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리만 대사는 군인에 대한 감사와 인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군복무는 영광스러운(honor) 일입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 나라를 지키는 장병들이 있어

국민들이 안전하게 생활하는 것이죠. 우리는 모든 장병들에게 감사해야 하며

그들의 노고는 반드시 인정받아야 합니다.”

 덴마크는 우리와 같은 징병제 국가다. 그는 군복무에 대해

“특정계층이 아닌 모든 계층(all layer)에서 의무를 지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군복무는 젊은이들이 견문과 인맥을 넓히고 새로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양국 긴 역사 통해 교류…파트너십 강화

 리만 대사는 양국 관계가 6·25 전쟁 이후 긍정적으로 발전해왔다고 평가했다.

 “한국과 덴마크는 지난해 수교 5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양국은 긴 역사를 통해 교류하며

파트너십을 강화해왔죠. 그 결과가 바로 현재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입니다.”

그는 앞으로 양국의 우호관계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양국의 무역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증거입니다. 관광객도 증가하고 있고

학생들의 교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양국은 국가 차원을 넘어 지방당국도 서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과 코펜하겐 사이에 체결된 MOU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덴마크는 국민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 비결을 묻자

“한국도 행복지수가 낮은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행복은 일과 사교생활(social life)의 올바른 균형(balance)에서 옵니다. 덴마크 사람들도

물론 열심히 일하죠. 하지만 여가시간을 활용한 사교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족·친구를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훌륭한 복지제도와 건강한 자연환경 역시 행복의 요인입니다.” 

 리만 대사는 덴마크의 국제안보 문제 동참 의지를 강조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덴마크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소말리아 등에서 국제평화유지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덴마크는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의 테러 문제에도 지속적으로 대응하며 민주주의·인권·자유,

그리고 법치주의의 가치를 지켜나갈 것입니다.” “6·25는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토마스 리만 대사(사진)가 말했다. 그의 조부 칼 리만은 1939년 소련과 핀란드의 ‘겨울전쟁’에서

의료활동을 펼쳤던 외과 전문의였다. “6·25 참전을 고심하던 덴마크 정부는 전쟁을 경험한

 할아버지에게도 의견을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국에 의료선을 보내야 한다’고 답했고 실제로

유틀란디아호가 파견됐습니다.” 그리고 65년이 흐른 오늘, 손자 토마스 리만이 주한 대사로서

한국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덴마크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에 파견한 의료선 유틀란디아(Jutlandia)호. 유틀란디아호는 1951년 1월 23일 한국으로 출항해 45일째 되던 날 부산에 도착, 적극적인 의료지원 활동을 펼친다. 연합군 부상자의 본국 귀환과 의약품 조달 등을 위해 한국과 덴마크를 왕복하며 3차에 걸쳐 의료지원 파견임무를 수행했다. 유틀란디아호는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보유한 의약품과 의료기재를 유엔 한국재건단(UNKRA)을 통해 민간병원에 기증하고 8월 16일 본국으로 돌아갔다.


 

 

 

 

999일간 지원 아끼지 않은  양국 우호 상징 ‘평화의 배’

 

유틀란디아호 정박했던 자리에 기념비 세워 

 

   “그때 한국에서 전쟁이 있었지. ‘유틀란디아’라는 이름의 배가 전쟁에 참여했어.

병원으로 쓰기 위해 항구를 나섰지….” 

 덴마크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는 ‘킴 라르센’의 ‘유틀란디아’ 노래 가사다.

덴마크는 6·25 전쟁 당시 수준 높은 의료진과 최첨단 의료시설을 갖춘 의료선 유틀란디아호를 파견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침공에 무너졌던 아픈 기억을 가진 덴마크는

변방의 약소국이 냉전의 소용돌이에 희생되는 모습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유틀란디아호는 999일 동안 한국에 정박하며 인도주의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무려 5000명에 달하는 유엔군과 6000명 이상의 민간인을 치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 덴마크로 돌아간 유틀란디아호는 1965년경 해체됐다.

이제 배가 정박했던 그 자리에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 기념비는 한국산 화강암으로 만들어 덴마크에 보내진 것이다. 

   65년이 흐른 지금도 유틀란디아호는 두 나라 우호의 상징으로

양국 국민의 가슴속에서 평화의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