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시크릿 100선<66> V- 병기

獨, 크루즈미사일 초기 형태… ‘복수의 무기’ 명명 

 

독일은 자국의 도시들을 폭격한 연합군에게 보복하기 위해 무기를 개발하고 ‘복수의 무기(Vergeltungswaffen)’라고 이름 붙였다. 영국은 이 무기를 ‘V-병기(V-weapons)’라고 불렀는데 이는 V-1에서 V-3까지 세 가지 타입이 있었다.

V-1 비행 폭탄은 조종사 없이 펄스 제트엔진으로 추진되는 작은 비행물체로, 크루즈미사일의 초기 형태였다. 램프에서 발사되거나 하인켈Ⅲ 폭격기에서 공중 발사되는 이 비행 폭탄은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의 주도 아래 페네뮌데에서 처음 시험 발사됐다. 실전에서 사용된 것은 1944년 6월 13일 런던을 향한 발사가 처음이었다.  

대륙간탄도탄의 전신인 V-2 로켓은

V-1보다 파괴력이 강해진 것은 물론 격추하기도 어려웠다.

사진은 발사 준비 중인 V-2 로켓. 책미래 제공

 

1944년 7월 1일 V-2 로켓의 공격을 받아 붕괴한

영국 런던의 건물 잔해 속에서 구조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책미래 제공

 

 

   1944년 6월 13일 런던 향해 첫 발사 
 그해 6월 말까지 2452발의 V-1 로켓이 런던을 향해 발사됐고 그중 3분의 1인 약 800발이 런던을 강타했다. 나머지는 연안 혹은 목표물에 도착하기 전에 터지거나 전투기나 대공포에 의해 격추됐다. V-1 로켓 중 아주 일부는 하인켈Ⅲ 폭격기에서 발사됐지만, 지상에서 발사되는 것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졌다. 절반가량이 날아가지도 못하거나 발사되자마자 터졌기 때문이다.

 1944년 10월부터 1945년 3월까지 V-1 로켓 공격은 북서 유럽에 주둔하고 있던 연합군에 물자 수송을 맡고 있던 안트베르펜 항구에 집중됐다. 런던에 대한 공격은 1945년 3월 3일부터 네덜란드에 있던 발사기지에서 재개돼 3월 말 발사기지가 점령될 때까지 계속됐다. 1만 발 이상의 V-1이 런던을 향해 발사됐고 그중 7888발이 바다를 건넜고 3957발이 목표물에 다다르기 전에 격추됐다. 런던에는 2419발의 V-1이 떨어졌고 30발이 사우샘프턴, 포츠머스에 떨어졌고 1발이 맨체스터에 떨어졌다. V-1으로 인해 6184명이 죽었고 1만7981명이 부상당해 영국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V-1 로켓은 ‘개미귀신’ 혹은 ‘버즈 폭탄’이라고도 불렸는데 정해진 목표물 상공에서 속도를 줄이면서 지상으로 내려올 때 나는 엔진 소리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V-1 로켓이 떨어지는 부근에 있던 모든 사람은 순간적인 정적과 함께 로켓이 어디로 떨어질지 걱정해야 했다.

 V-2 로켓은 위력이 더 대단했다. 폭탄 적재량이 V-1 로켓의 875㎏보다 더 늘어난 975㎏일 뿐 아니라 중간에 스스로 터지는 경우는 줄어들었고 격추도 힘들어졌다. V-2 로켓은 지금의 대륙간탄도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최대 속도는 시속 5800㎞였고 지구 위로 96㎞까지 상승할 수 있었으며 320㎞까지 날아갈 수 있었다. 

  대륙간탄도탄 전신 ‘V-2 로켓’

 V-2는 1942년 10월에 최초로 발사에 성공했지만, 연합군 특히 영국에는 다행스럽게도 개발과 생산 과정이 굉장히 복잡했다. 영국 공군과 미 육군 항공대의 페네뮌데 발사기지 폭격으로 V-2 로켓 관련 시설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자 독일은 1944년 5월 하르츠 산맥에 있는 노르트하우젠의 지하 공장으로 생산시설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V-2의 공격은 1944년 9월 8일 시작돼 1945년 3월 27일까지 계속됐다. 하루 약 5발꼴로 총 1054발의 V-2가 영국에 떨어졌는데 이로 인해 2700여 명의 런던 시민이 사망했다. V-2는 은폐가 쉬운 작은 콘크리트 패드에서 발사됐는데 모든 발사 장치는 이동이 쉬워 발사기지가 발각돼 폭격기가 공격해도 명중시키기 어려웠다.

 V-1이나 V-2와는 다른 개념인 V-3 초장거리포는 프랑스 북구 칼레 부근에 있는 미모예퀴즈에 2개의 발사기지를 두고 런던을 향해 분당 10발의 포탄을 발사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용되기도 전에 1943년 11월과 1944년 7월에 두 기지가 각각 연합군에 폭격당하면서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독일은 안트베르펜과 룩셈부르크에 있던 연합군을 향한 공격도 감행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고 결국 연합군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독일 스스로 화포들을 파괴하고 말았다. 

 하지만 V-1과 V-2는 연합군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베른헤르 폰 브라운은 1945년 자신의 연구팀 대다수와 함께 미군에 투항, 미국에서 로켓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결국, 폰 브라운의 연구는 핵미사일 억지는 물론 달 탐사 로켓 제작에도 공헌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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