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Space

[M-기네스(14)] 우리나라 최초의 연습기는?!

[M-기네스] <14> 우리나라 최초의 연습기 

 

 

 

[M-기네스] 열네번째 퀴즈~~

Q. 우리나라 최초의 연습기를 아시나요?!

 

 

 

 

 

 

 

국민의 성금으로 도입한 항공기,

‘건국기’라 불리며 사랑받은 국민 애국심의 상징적 무기,

정찰 및 연락임무를 수행하며

퇴역할 때 까지 총 588명의 조종사를 양성,

접철식 랜딩 기어로 공중 고속 비행 가능,

건군 초기 대한민국 공군 육성에 이바지했으며,

전 국민의 애국충정이 담긴 헌납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 어떤 항공기보다도 역사적 의미가 큰

‘우리나라 최초의 연습기’는 무엇일까요?!  

 

 

 

기록으로 보는 재밌는 이야기, ‘M-기네스’에서

 

 

오늘은 우리나라 최초의 연습기

『 T-6 텍산 』 에 대해 알려드릴께요~!

 

 

 



 

 

# 건국기의 역사적 의미

 

 


 

건군 초기 우리 공군이 보유했던 항공기는 L-4와 L-5 연락기 20대가 전부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전력강화를 위해 미 정부에 항공기 군사원조를 요청했지만,


미국은 한국군을 공격과 방어능력을 갖춘 군대로서보다는

38선 경계에 필요한 방위군 정도의 육성정책에 따라 우리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죠.

 

이에 우리 정부는 자력으로 항공기를 확보하기 위해 1949년 9월부터 범국민적인 항공기 헌납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 결과, 3억5000만 원의 성금을 모금해 1949년 말 미국 민간 항공사를 통해 캐나다 제 중고 T-6 연습기 10대와

12.7㎜ 중기관총 20정, 실탄 5000발, 1년분의 부속품 등을 함께 들여왔어요~

 

▲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T-6 항공기 편대가 전선으로 출격하고 있다.

 

 

1950년 5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은 T-6 항공기 헌납식에서

국가건설과 애국심을 표상하기 위해 항공기의 명칭을 건국기(建國機)라고 명명했습니다.


또 이를 사는 데 공헌한 각 도와 사회단체의 이름을 넣어 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죠.

 

                 

▲ 건국기 헌납명명식 당시의 조종사들  

 

 

 

▲ 국민의 열망을 담아 보무도 당당히 비행하는 건국기 편대      

 

 


T-6는 원래 35년 미국 노스아메리칸사(North American Aviation)가 개발한 단발엔진의 연습기입니다.

미국에서는 ‘AT-6 Texan’ 또는 ‘SNJ’, 영국 공군에서는 Harvard로도 불렸어요~
 

건국기 도입 후 한 달 만에 발발한 6·25전쟁 초기 T-6는 날개에 폭탄을 장착해 수차례의 폭격작전을 수행했습니다.


1950년 7월 F-51 무스탕기 도입 이후에는 연습기로 임무가 전환됐죠.


T-6는 1962년 12월 퇴역할 때까지 정찰 및 연락임무를 수행했으며, 총 588명의 조종사를 양성했습니다.

 

건군 초기 대한민국 공군 육성에 이바지한 T-6는 전 국민의 애국충정이 담긴 헌납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 어떤 항공기보다도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10호기인 T-6 건국기 경북호

 

 

 

■ T-6 주요제원  

 길이

 8.84m

 너비

 12.81m

 높이

3.57m

 최대이륙중량

 2,548㎏

 최대속도 시속

 335㎞

 항속거리

 1,175㎞

 승무원

 2명


 

 


 

 

# T-6 텍산 도입 배경

 

 


 


 
우리나라의 최초의 연습기 도입 배경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데요~


쉽지 않았던 T-6 텍산의 도입 배경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드릴께요! :)

 

건군 초기 우리 군이 보유한 L-4·5 연락기로는 공중전이나 근접 항공 지원 등

본격적인 전투 임무 수행이 불가능했습니다.

이 때문에 군은 물론 이승만 대통령 등 국가 수뇌부도 새로운 항공기 도입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하지만 전투기 등 추가적 항공기 확보는 쉽지 않은 과제였죠...
 
당시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미국은 엄청난 양의 잉여 무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아르헨티나 등에는 단돈 1달러에 전투기를 매각하기도 했지만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이유로 한국에만은 무기 제공에 극히 인색했습니다.


1949년 초 미국을 방문한 조병옥 특사는 전투기 75대, 폭격기 12대, 연습·정찰기 30대, 수송기 5대를

한국에 원조해 주도록 미국 정부에 요청했지만 성과가 없었습니다.

 

1호기로 명명된 T-6 건국기 교통1호의 실물 자료

 

이대통령은 1949년 2월 한국을 방문한 케네스 로열 미국 육군장관에게 다시 항공기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이때도 미국 측은 "설사 항공기를 원조해도 한국은 운용비를 감당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이대통령은 이미 북한이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항공기 원조를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이 무렵 미 공군은 서울 김포 비행장에 주둔하고 있던 B-26 경폭격기 30대를 퇴역시켰습니다.


한국 측은 미 공군 당국에 B-26을 해체하지 말고 인도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해당 미 공군부대 관계자들은 "미 정부의 방침은 한국 측에 폭격기를 제공하지 않는것"이라며

도끼로 폭격기를 파괴, 고철로 매각해 버렸습니다.


이처럼 공군의 항공기 도입 계획이 지지부진하자 태양신문 등 일부 언론은

"미국이 항공기 원조를 해주지 않는다면 국민 성금을 모금, 외국에서 항공기를 구입하자"고 주장했습니다.

 

 

▲ 공군3훈련비행단 교육생들이

6·25전쟁 직전 국민 성금으로 구매했던 T-6 훈련기 앞에서

선배 조종사들처럼 비행기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국회도 이에 적극 호응, 49년 9월 30일 '항공기 헌납 운동에 대한 긴급 결의안' 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이러한 가운데 49년 10월1일 한국 공군이 육군으로부터 정식으로 독립했으며 성금 모금도 더욱 힘을 얻었습니다.

49년 말까지 일반 국민들은 물론 공무원.해외교포 등의 성원에 힘입어 총 3억 5000만원이 모금되었고,

원래 항공기 10대를 구입할 수 있는 2억원이 모금 목표였으나 1억 5000만원을 초과 달성한 것이었습니다.
 
용기백배한 김정렬 공군참모총장은 미국 측에 항공기 판매를 요청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미국은 항공기 판매를 거절했고,


우리 공군은 공식 계통을 통한 항공기 구입에 실패하자

비공식 경로로 항공기 구입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49년 말 미국의 민간 항공기 판매사인 에어 캐리어사의 일본 대리점을 통해

캐나다제 중고 T-6연습기 도입 계약을 간신히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소요된 금액은 총 1억9000만원(30만 달러)였죠.


한국 공군은 전투기나 폭격기도 아닌 연습기를 구입하는데도 이토록 어려움을 겪었습니다..ㅠ_ㅠ

 

 


 

 

# T-6 연습기의 일생

 

 


 

1950년 3월부터 계약에 따라 T-6 연습기가 1대씩 한국에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달 뒤인 5월에는 열 번째 T-6이 한국에 도착해 도입이 완료됐죠.


같은 달 14일 개최된 T-6도입식에서 이대통령은 '장비만으로는 우리 공군이 아직 열세이지만

국민의 애국심이 뭉쳐진 건국기를 보유한 만큼 정신적으로는 다른 나라의 공군보다

우리 공군이 더 우세할 것'이라고 자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T-6은 국민들의 애국심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무기 체계였던 것입니다.


T-6은 비록 연습기였지만 기관총 2정을 탑재할 수 있고 재질도 금속으로 돼 있어 무장도 없고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L-4/5연락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능이 우수한 항공기였습니다.

또 이착륙 시 사용하는 랜딩 기어도 L-4/5와 달리 고정식이 아닌 접철식이어서

공중에서 보다 고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 종전 후 공군 연습기로 복무 중인 모습     

 


한때 AT-6으로도 불리던 T-6은 원래 미국 노스아메리칸사가 1935년에 개발한 항공기입니다.

미국에서는 연습 혹은 훈련기로만 사용돼 무장이 장착된 사례가 없지만

외국으로 수출된 T-6은 기관총 2~3정을 장착한 경우가 많습니다.


T-6은 최초 개발 이후 여러 차례 개량된 후 1938년부터 50년대 초반까지 1만7000대가 생산됐습니다.


1940, 1950년대 미국의 연습기 중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기종이 바로 T-6인데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미국 조종사가 T-6으로 비행훈련을 했기 때문에

T-6은 항공기 발달 사상 매우 중요한 항공기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또 중고 항공기 수리해 직접 비행하기를 즐기는 미국의 고전 항공기 마니아들의 구입 1순위로 꼽힐 정도로

지금도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T-6을 도입한지 한 달 만인 50년 6월 6·25전쟁이 발발했는데요~

L-4/5연락기는 폭탄을 손으로 던져야했지만

T-6은 날개에 국산 폭탄 8~10발을 탑재할 수 있어 작전 수행이 좀 더 용이했습니다.

하지만 전투기가 아닌 연습기라는 근본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어요.

전쟁 직후 50년 7월 급히 새로 도입된 F-51 무스탕 전투기에 밀려

T-6은 전투 임무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입니다.

 

 

1951년 8월 25일 해군은 T-6 건국기를 수상주행형으로 개량해 해취호라 명명한다.


 
무스탕 도입 이후 T-6은 다시 연습기 임무로 전환돼 1962년 12월 1일 퇴역할때 까지

총 588명의 조종사를 양성했습니다.


T-6은 실전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공군 발전에 대한 국가 최고 지도부의 의지와

국민들의 소망이 서려있는 항공기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는 그 어떤 항공기보다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T-6은 현재 공군사관학교 야외 항공기 전시장을 비롯해 전쟁기념관과 서울 현충원 등지에 전시돼 있습니다.


▲ 전쟁기념관 2층 실내 대형장비전시실에 전시된 T-6 건국기.

 

 

 

 

'M-기네스' 는?! 기네스북에 오른 군 관련 기록이나

최고, 최초, 최대, 최소 등 기록과 군을 연결한 흥미로운 소재를 기사화한 블로그 콘텐츠 입니다.

다음편에는육군훈련소에 있는 동양 최대 규모의 세탁소 에 대해 알려드릴께요! 

기대 많~이 해주세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