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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기네스(8)]종군기자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

[M-기네스] <8> 세계 최초의 종군기자부터 6.25전쟁의 유일한 종군 여기자까지

『 종군기자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 』

 

 

[M-기네스] 여덟 번째 퀴즈~~

Q. 6.25전쟁을 취재한 유일한 여성 종군기자는 누구일까요?!

 

 

6·25전쟁을 취재한 300여 명의 종군기자 중 유일한 여성,

서울 함락·낙동강 전투·인천상륙작전을 목격하고 기록하며

전쟁의 비극적 현장을 전세계에 타전한 여인,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기자,

대한민국 해병대에 '귀신 잡는 해병'이란 별명을 처음 지어준 사람, 그녀는 누구일까요?!~

 

기록으로 보는 재밌는 이야기, ‘M-기네스’에서

 

 

오늘은 세계 최초의 종군기자부터 6.25전쟁의 유일한 종군 여기자까지

 

'종군기자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에 대해 알려드릴께요~!

 

 

 

 


 

# 목숨을 건 취재로 전장의 생생함을 전하는 '종군기자'

 


 

 

여러분은 '종군기자'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계시나요?! 

종군기자는 전쟁에 종군하여 일선이나 군의 상황을 보도하는 신문기자·카메라맨·작가·화가 등의 특파원 기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목숨을 각오하고 취재를 해야 하는데요~ 실제로 취재 도중 사망한 기자도 있다고 하네요..

정말 투철한 직업의식과 사명감이 없다면 취재에 임하기 어렵겠죠?!

누구의 생명도 보장할 수 없는 곳인 전쟁터에서 기자들도 예외는 없을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종군기자는 <런던 타임스>의 W.H.러셀 이예요.

크림전쟁에 종군해 일선의 참상을 보도한 인물입니다~


종군기자들은 일반적으로 보험에 가입하고 있는데, 걸프전쟁에 참가한 미국의 기자들은 사망 시 약 150만 달러가 지급되는 보험에 가입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94년 중앙일보가 보스니아내전에 종군한 기자들에게 최초의 보험을 들어주었는데,

사망시 보험금은 1억원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험금이 아무리 억만금이라고 해도 사명감이 없다면 절대 전쟁터에서 치열한 취재를 하지는 못하겠죠~! 
 
 

 


 

# 실존했던 유명한 종군기자 몇 분을 소개해드릴께요~

 


 

 


ⓛ Alan McCrae Moorehead (1910-1983)
호주출신의 런던 데일리 익스프레스지 기자로 북아프리카 전투에 종군하였으며, 유럽전선에도 참전해
영국 기사작위를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Alan Moorehead (왼쪽)


 
② Philip Jones Griffiths (1936-2008)
영국 맨체스터 가디언지 사진기자로 베트남전 당시 구정공세와 유명한 북폭 사진 등으로 유명한 기자입니다.
미군이 고엽제를 살포하는 사진을 촬영해 유명해졌습니다.
 
 

 

 


③ Wilfred Burchett
호주태생으로 불가리아 국적을 가진 프리랜서 종군기자 입니다. 2차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소련 KGB의 스파이이기도 했던 기자입니다.
 

 


 
④ Harrison Salisbury
뉴욕타임즈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2차대전과 베트남전 종군기자로 활약하였으며 1955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습니다.

 

 

 


 
⑤ 美 NBC소속 리처드 엥겔
 
리처드 엥겔기자는 미국의 NBC 소속으로 2003년 이라크전을 포함하여 바그다드, 카불, 예루살렘, 베이루트 등 주로 중동의 분쟁지역을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하는 대표적인 종군기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그가 분쟁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필연처럼 전쟁이 개시돼 "전쟁을 알리는 자(전쟁 개시자)“로 불리기도 했죠.

 

 

 

⑥ 로버트 카파

로버트 카파는 1930년대부터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종군하다 지뢰를 밟고 폭사하기까지 다섯차례의 전쟁을 취재했습니다.
그가 사실성, 현장성, 직접성이라는 사진미학을 포토저널리즘을 통해 완성하였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요.
카파는 "만약 당신의 사진이 충분하게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은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네요.
현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 정신' 을 일컬어 카파이즘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 6.25전쟁을 취재한 유일한 여성 종군기자

 


 


   미국 일간지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극동지국장인 마가렛 히긴스 는 종군 여기자로 전쟁에 참가해 6·25의 비극적 현장을 전세계에 타전했습니다.

그녀는 전쟁을 취재한 300여 명의 종군기자 중 유일한 여성 으로 서울 함락, 낙동강 전투, 인천상륙작전을 목격하고 기록했습니다.

 

 

▲ 1951년 출판된 마가렛 히긴스 기자의 책 ‘한국전쟁’

 


그녀는 여성으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기자이기도 한데요~

보통 대한민국 해병대를 '귀신잡는 해병' 이라고 부르죠? 이 별명을 처음 지어준 사람이 바로 마가렛 히긴스 기자라고 합니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도쿄 특파원으로 파견된 그녀는 1950년 6월 27일 한국에 들어와 온 전쟁터를 누비고 다니며 취재를 하였습니다. 

여자가 머무를 곳이 못된다며 당시 미 8군사령관이었던 월튼 M. 워커 장군에 의해 추방되었지만 즉시 워커 장군의 상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을 찾아가서 자신을 다시 전쟁터로 보내줄 것을 요구했죠.

마가렛 히긴스는 여자이기 때문에 대우를 원하기 보다는 기자로서의 임무를 다하길 원했습니다.

그녀는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도 참여했습니다. 

 

 

▲ 마가렛 히긴스 기자와 맥아더 장군

 

 

생사를 넘나들며 장진호 전투(1950.11.27~12.11)나 유담리, 하갈우리, 고토리, 진흥리, 흥남부두까지의 후퇴작전을 생생하게 취재일지에 담았습니다.

한강의 다리가 폭격되어 뉴욕으로 기사를 전할 수 없게되자, 그녀는 군용 수송기를 타고 도쿄까지 날아가 기사를 전송한 뒤 다시 한국에 돌아오기도 했죠.

이런 그녀의 기자정신을 잘 나타내는 짤막한 대화가 전해지기도 하는데요,

수원에서 한 미군 대령이 마가렛 기자에게 "젊은 아가씨,이곳은 위험하니 일본으로 돌아가라(Young lady, go back to Tokyo! There may be trouble.)"고 하자 마가렛 기자는 "이곳이 위험하지 않다면 내가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I wouldn’t be here if there were no trouble.)"고 답했다고 합니다.


직접 전쟁의 현장에서 기록한 전쟁기록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취재일기는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2010년 마가렛 히긴스 기자에게 외교훈장 흥인장을 추서했고, 그녀의 딸과 손자가 방한해 훈장을 수령하기도 했습니다. .

 

   

마가렛 히긴스 기자의 모습

 

 

 


 

# 여기서 잠깐! 그럼 '국방일보의 첫 종군 기자' 파견은 언제일까요?!

 


 

 

국방일보의 첫 종군 기자 파견은 베트남전 때 였습니다. 
1967년에 들어서 베트남전은 더욱 치열해졌고 파견한 국군의 작전활동이 본격화됨에 따라  (현재 국방일보의 전신인) 전우신문도 한국군부대와 장병들의 활약상을 담는 현지보도물을 대폭적으로 늘려갔습니다.
전우신문은 날로 증가하는 ‘베트남전 소식’을 보다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하기 위해 사상 첫 해외 특파원인 김진석 기자를 선발하고, 전장으로 보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1966년 2월 11일이었어요~
파월 한국군의 전공기는 철군하던 75년까지 계속되어 후일 ‘파월 한국군 전사’를 정리하는데 소중한 역사자료로 활용되었습니다.

 

 

 

'M-기네스' 는?! 기네스북에 오른 군 관련 기록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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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는 '세계 최소형 장갑전투차량'을 알려드릴께요! 기대 많~이 해주세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