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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동향/국내

6.25전쟁 시기 사망한 '중국군 유해송환' 추진경과 및 성과

[국내 군사동향]

"한중관계 개선···동북아 평화협력 다지는 촉매제"

역사적 전례없는 437구 유해 송환

"감동·감사·표현" 현지반응 뜨거워

현재 '심양 중국군 능원' 임시 안치

 

 

지난 3월28일 오전 인천 중구 운서동 인천국제공항 행사장에서 열린 중국군 유해 및 인도식에서 중국군이 유해를 인도받고 있다. 이날 인도된 437구의 유해는 6·25전쟁 당시 전사한 뒤 우리나라에 안장됐던 중국군 유해로 북한을 거치지 않고 처음으로 중국에 인도됐다.   <사진 : 국방일보 김태형 기자>

 

 

2013년 6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측에 ‘6.25전쟁 시기 사망한 중국군 유해송환’을 전격 제의하면서 시작된 중국군 유해송환 업무가 9개월의 추진과정을 거쳐 지난 3월 28일 한국 측 국방부 차관과 중국 측 민정부 국장 주관하에 인천공항에서 경건하고 의미 있는 인도식 행사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중국군 유해송환 업무는 국방부 주도하에 외교부, 관세청, 공항공사 등 유관부처와의 유기적인 협조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및 25사단, 국군 수송사령부, 국방부 근무지원단 등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진행되었다. 중국군 유해송환은 우리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과거 적대국이었던 중국에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437구의 대규모 유해’를 송환함으로써 한중 관계 개선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는 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동시에 이번 유해송환이 ‘아시아 패러독스’ 속에 있는 동북아 평화협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었던 바, 본 지면을 활용하여 중국군 유해송환의 경과 및 주요 성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군 유해송환의 역사적 배경

 


 

 


1953년 7월 27일 유엔사 측과 공산군 측은 정전협정을 통해 휴전 후에도 “상대방 관할구역에서 발견된 상대방 시체를 발굴, 반출해 간다”고 합의(정전협정 13항 ‘ㅂ’목)하였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 1954년 8월 제47차 군정위 본회의에서 양측은 ‘쌍방 군사인원 시체 인도ㆍ인수에 관한 행정상 세목의 양해’에 관한 문서를 합의하여 1954년 9월에서 10월 말까지 유엔사 측은 1만3천5백여 구의 공산 측 시체(유해)를, 공산 측은 약 4천여 구의 시체를 상호 반환하였다.

이후 추가로 발굴된 중국군 유해는 정전협정에 근거하여 1981년부터 1997년 1월까지 총 5회, 43구가 판문점에서 중국 측으로 인계되었다. 그러다 2000년 9월 유엔사 측의 중국군 유해 1구 인수 요구에 대해 북측이 “중국군 유해는 우리(북측)와 관계없는 일이므로 알아서 처리하라”며 거부하면서 중국군 유해의 송환은 중단되었다.

북한군이 정전협정의 무실화 차원에서 중국군의 정상적인 유해송환을 지속적으로 거부함에 따라 우리 정부는 제네바협약에 기초하여 경기도 파주 지역에 ‘북한군·중국군 묘지’를 조성하였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시설을 보수하는 등 대한민국 정부의 국격에 맞도록 최근까지 해당 묘역을 관리해 왔다.

 

 

 

 

 


 

박대통령의 중국군 유해송환 제의와 한중 실무협의

 

 


 


박근혜 대통령은 1997년 이후부터 중국으로 송환되지 못한 중국군 유해 문제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2013년 6월 29일 방중 기간 중 중국 칭화대 연설에 앞서 류엔동 부총리에게 6.25전쟁 시기 중국군 전사자 유해의 송환을 제의하였고 중국 측도 긍정적으로 화답하였다. 2013년 11월 중국 측이 유해송환을 위한 실무협의 의사를 우리 측에 통보해 오면서 한중 간 본격적인 실무협의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2013년 12월 4일 중국 민정부 보훈처 부국장을 단장으로 중국 측 ‘유해송환 실무협조단’이 방한하여 제1차 한중 유해송환 실무협의가 진행되었다. 우리 측은 국방부 군비통제 차장(문상균 준장)이, 중국 측은 민정부 보훈처 부국장(리귀광)이 협상대표가 되어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1차 한중 실무협의를 진행하였으며, 협의 결과 양측은 “중국 명절인 청명절(4월 5일) 이전 중국군 유해를 송환한다”는 한중 간 1차 실무합의서를 채택하였다.

한중 유해송환 실무협조단은 중국군 유해송환의 시기, 방법, 인도식 행사 등 ‘한중 실무합의서’의 구체적 이행문제 협의를 위해 2004년 1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제 2차 한중 실무협의를 개최하였다.

실무협의 결과 양측은 2014년 3월 28일 인천공항에서 한중 공동 주관으로 중국군 유해송환 인도식을 개최하기로 합의하였으며, 향후 추가 발굴되는 중국군 유해는 매년 청명절 이전에 정례적으로 송환하기로 하였다.

 

 

 


 

유해송환 준비와 인도식 행사


 


 


실질적인 유해송환 준비는 2013년 12월 19일 파주 북한군·중국군 묘지에서 중국 측 인사 참석하에 중국군 유해의 개토식 행사를 기점으로 착수되었다. 이후 12월 19일부터 24일까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전문 발굴요원, 25사단 발굴 지원병력 등이 투입되어 혹한의 악조건 속에서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중국군 유해를 재발굴하였고, 이를 수습하여 인근에 위치한 임시감식소로 이송하였다.

중국군 유해송환 준비과정은 유해 세척 및 건조전문 유해감식관에 의한 정밀감식 유해와 유품, 감식기록지 일치화 유해 입관 등의 순서로 이루어졌다. 입관이 완료된 유해는 임시 안치되었다가 인도식 행사 하루 전에 400여 명의 25사단 장병에 의해 인천공항으로 이송되어 중국 측 민항기 내에 안치되었다.

마지막 단계인 인도식 행사는 3월 28일 인천공항에서 한국 측 국방부 차관과 중국 측 민정부 국장 공동 주관으로 한국 측과 중국 측 주요인사, 유엔사 측 관련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우리 측 운구병이 중국 측 운구병에게 유해를 인계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참석자들은 이 순간이 한중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임을 직감하였다. “생명 소생의 계절에 내리는 봄비가 소리 없이 만물을 푸르게 변화시키듯이 ‘중국군 유해송환’이 봄비가 되어 한중 관계 발전과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는 장강(長江)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는 백승주 국방부 차관의 송환사에 중국 측은 “이번 유해송환을 계기로 한중 관계가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을 확신한다”고 화답하였다.

인천공항에서 행사를 마친 후 중국군 유해 437구는 현재 ‘심양 중국군 능원’ 내에 임시 안치되고 있으나, 향후 묘역이 완공된 이후에는 한중 간 유해송환을 기념하는 표지석의 설치와 병행하여 신규 묘역에 안치할 예정이다.

 

 

 

국방TV에서 제작한 중국군 유해송환 특집다큐멘터리를 유튜브 링크를 통해 올렸습니다.  


 


 

중국군 유해송환의 성과와 전망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었던 437구의 대규모 중국군 유해가 송환된 이후 중국 내에서 우리 정부에 대한 감동과 감사의 표현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시진핑 국가 주석을 포함한 중국 고위급 인사들은 성공적인 중국군 유해송환을 위해 노력해 준 대한민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감사를 표명했으며, 6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중국군 유해를 맞이하면서 13억 중국인들 또한 “과거의 적국임에도 불구하고 묘역을 정성스럽게 관리해 주고 질서정연하게 인도식을 진행해 준 조치에 감동했다”면서 진심어린 감사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의와 시진핑 주석의 화답으로 진행되었던 ‘437구의 대규모 유해송환’이 중국인들의 진심 어린 가슴속 변화를 이끌어내었던 것이다.

“중국군 유해송환이 한중 관계 발전과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는 장강(長江)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이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가동과 ‘동북아 평화협력’을 구현해 나가는 촉매제로서의 폭발적 에너지를 함유하고 있다. 한중 관계 발전에 기여했던 부분을 넘어서 ‘중국군 유해송환’은 ‘북한군 유해송환’뿐만 아니라 남북이 이미 합의한 ‘유해 공동발굴’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촉진해 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DMZ 일대에서 고국으로 송환되지 못한 남·북·미·중 등 6.25전쟁 참전국 전사자 유해들을 공동 발굴함으로써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에도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승현 육군중령·국방부 정책기획관실 북한정책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