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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체계/항공무기

무인항공기(UAV)

무인항공기(UAV)

 

무인항공기(UAV : Unmanned Aerial Vehicle)란 조종사가 직접 항공기에 탑승하지 않고, 원거리에서 무선으로 통제하거나 스스로 자율비행이 가능한 비행체를 통칭하는 말이다. 항공기에 조종사를 위한 공간이나 안전장비, 그리고 이를 위한 기술적인 제한이 없기 때문에 무인기는 유인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형이면서 가격 경쟁력이 높다.

 

 

 

또한 유인기가 수행하기 어려운 위험한 임무를 인명손실 없이 수행할 수 있어 향후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은 항공기 중 하나다.제트기의 시초에 대한 논란처럼 무인기의 시초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항공기의 능력이 입증된 제1차 세계대전부터 무인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은 이견이 없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은 무인기에 배터리를 내장시키고 통제소와는 구리선으로 연결된 무인기를 시험했으며, 1917년 영국은 무선조종을 이용한 무인기를 제작해 비행시켰으나 요구성능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미국은 1916년에 자동조종장치를 부착한 무인기를 제작했으나 비행상태 변화에 대한 대처능력 부족으로 제작기 대부분이 추락해 버렸다.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됨으로써 무인기는 세상에 존재를 알리지 못하고 발전 가능성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만다.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을 비롯한 미국·영국은 초보적 기술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무인기를 개발했는데 그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현대 순항미사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V-1 미사일이다.

 

펄스 제트엔진을 사용하는 V-1 미사일은 1000 파운드급 탄두를 장착한 채 시속 400마일의 속도로 200마일을 비행할 수 있었다.그 후 무인기는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한국전 당시 무인기는 정찰 목적에 제한적으로 사용됐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그 몫을 단단히 해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은 북베트남의 지대공미사일로 인해 항공기 손실이 많았는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무인기를 본격적으로 활용한다. 베트남전에서 무인기가 우선적으로 활용된 분야는 사진정찰, 전자정보수집(ESM), 적 지대공미사일 유인, 전자방해(ECM) 등이었으며 이러한 임무를 수행해낸 유명한 무인기로는 라이언(Ryan) 147 시리즈 등이 있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무인기는 중동전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무인기의 잠재능력을 일찍 파악한 이스라엘은 중동전에서 무인기를 대량으로 사용해 아랍 측의 방공망을 성공적으로 교란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스라엘은 그 후에도 무인기 개발을 지속해 현재는 미국에 버금가는 무인기 개발

국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 무인기는 위성항법장치(GPS)의 발달로 유도가 훨씬 수월해졌고 센서장비 역시 전자광학·적외선 센서는 물론 합성개구레이더, 전자전 장비까지 탑재해 유인 정찰기에 버금가는 고성능화가 이뤄졌다. 이러한 능력은 걸프전에서 발휘돼 이라크군에 대한 표적정보 획득이나 해상에서의 기뢰제거, 해상감시, 이라크 레이더에 대한 전자전을 통해 미군의 인명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걸프전 후에도 무인기는 소말리아 내전, 보스니아전, 코소보전과 같은 지역분쟁에 투입돼 분쟁지역의 평화 유지를 위한 도로망, 분쟁지역 감시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 현대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인정받게 됐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공중전력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