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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자료

First IN, Last OUT! 육군공병의 모든 것!

지난 3월 1일은 공병병과 창설 65주년기념일이었다.공병병과 창설 65주년을 맞아 이번에는 육군공병학교와 공병병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한다.

전투를 수행함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럼 전쟁이 발발하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일까? 방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진지를 구축하고 장애물을 설치할 것이지만 반대로 공격을 하는 입장이라면 방어자가 준비한 장애물을 극복하고 아군이 이동할 수 있는 기동로를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또한 공격자나 방어자 모두 후방지역에서의 원활한 작전지원을 위해 각종 방호시설을 구축하고, 보급로를 확보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와같이 전쟁발발시에 전, 후방 각지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활동들이 바로 공병병과에서 수행하는 일들이다. 공병병과의 모토가 ‘시작과 끝은 우리가’(First IN, Last OUT)인 이유가 바로 이런 성격 때문일 것이다.

 

 

 

공병(工兵, Engineer)이란 먼저 글자의 의미를 보면 장인 공(匠人 工)자에 병사 병(兵士 兵) 즉 ‘장인들로 구성된 병과’란 의미를 가지며, 영어 ‘Engineer’는 기술자 공학자로 해석된다.  공병은 한마디로 ‘기술자 집단(병과)’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공병은 인사, 군수, 정보, 작전 등 모든 분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병과로서 매우 광범위한 범위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병과이다. 또한 “싸우면서 건설한다”는 말과 같이 공병병과는 전투임무를 수행하면서 병영생활관을 신축하는 등의 군 시설공사를 계획하고 집행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 육군을 이해하는 첩경! 

육군공병학교와 공병병과를 알아보도록 하자.

 

희생적정신을 배운다! 육군공병학교

 

 

▲ 육군공병학교의 공병탑, 이 공병탑은 공병학교 창설 7주년에 제3대 공병감인 엄홍섭장군이 전 공병인의 뜻을 모아 영원불멸의 희생적정신과 화목단결의 공병정신을 공고히하고 한국전쟁시 포연탄우아래 순직한 1500여 공병전우의 충혼과 명복을 빌고 민족의 염원인 남북통일을 이루는 날까지 국토방위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 공병을 상징하는 이 탑의 '建設' 휘호는 혁혁한 전공과 폐허화된 국토복구에 심혈을 기울인 공병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이승만대통령이 직접 하사한 것이다.    

 

 

< 육군공병학교마크 >

 

육군공병학교는 공병 병과의 산실이며 요람으로서 1948년 경기도 김포에서 창설된 이후 경북 우보, 고산, 경남 김해 등을 거쳐 1995년 현 위치인 상무대로 이전하였으며, 현재까지 약 61여만명의 공병 장병을 양성 배출함으로써, 군의 전투력 증강은 물론 국가안보와 국위선양에 크게 기여하여 왔다.

 

 

▲ 김해분성대시절의 육군공병학교


  6. 25 전쟁시에는 국난극복을 위하여 전투 공병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60년대  이후에는 경부고속도로건설 등 국책사업을 주도하여 국가 경제 개발의 일등공신으로 서의 역할을 하였고, 또한 최근에는 경의선, 동해선 남북철도 및 도로 연결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은 물론 국제평화 유지를 위해 소말리아, 앙골라, 동티모르, 아프간,이라크, 레바논, 아이티 등 7개국에 파병되어 대한민국과 우리 육군의 위상을 드높이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하였다.

 

▲ 육군공병학교 공병역사관 

 

 

최근 실시한 육군공병학교 위험성폭발물 개척팀 교육은  미군과 공동으로 교육함으로써 실제 전장상황에서의 효과적인 급조폭발물 대응기술과 미군들의 개선/발전된 교리를 접할 수 있는 효율적인 교육을 실시하며 공격발생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간부육성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육군공병학교 실물폭파훈련장에 관람시설이 준공되어 각종 폭발물들의 폭파 및 위력 시범과 실물 폭약 설치 및 폭파 등의 전과정을 교육생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 관람대에서 촬영한 실물 포민스의 발사 및 폭발장면

 

육군공병학교는 학교 인트라넷 홈페이지를 통해 실물폭파 훈련장 관람시설을 적극 홍보해 활용가치를 높이는 한편, 실물폭파실험을 통해 얻어진 각종 제원을 축적, 공유함으로써 육군공병학교를 실전적인 공병교육기관으로는 물론, 전투실험 검증의 최고기관으로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것이라고 한다.

 

육군공병학교에서는 적과 싸워 이기는 "정예공병육성"을 교육목표로 지뢰,폭파,장갑전투도자,다목적굴차기,전기공사,도하장비,정수장비,도자,모터그레이드,로우더,굴삭기,공병장비정비,측량,배관설비,발전기운용.정비등의 특기별교육과정을 운용하고 있다.

또한 육군공병학교는 전남대 공과대학과의 학술교류 양해각서체결과 지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안보교육, 대구공업대학 공병부사관의 위탁훈련등을 통해지속적인 민군협력의 장을 마련하고 다.


싸우면서 건설한다, 조국근대화의 선봉병과

 

 

우리나라는 개국 이후 산성축조, 도성(都城)건설, 선박주조 및 도선장구축 등의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으며 정조대왕 시절 정약용 선생의 한강상의 부교(가주교)구축, 화성축조 등은 빛나는 공병관련역사이다.

 

 

우리 군의 공병은 1948년 3월 1일 경기도 부평에서 제1공병정비중대를 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부 통위부 직할로 창설하면서 공병병과의 창설 시초가 되었다. 같은 해 5월 19일에는 경기도 부평에서 제1공병 기지중대가 창설되었고 동년 6월 중공장 중대가 부산에서 창설되어 현재 공병단 및 정비보급단의 모체가 되었으며 6월 7일에는 영등포에서 제1공병대대가 창설되었다. 그 후 육군 각 부대의 대폭적인 증·창설에 보조를 맞추어 공병도 실질적인 능력 보유를 위한 인재 양성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공병은 1948년 11월 25일 경기도 김포에서 오창근 대위를 교장으로 하여 제1공병단 예속으로 육군공병학교를 창설하고 간부 양성에 정진하였으며 국군조직법에 근거한 제병과 제정에 따라 1948년 12월 15일 공병 병과가 정식 제정되었다.


 6. 25전쟁 발발 이후 미군의 참전과 장비지원에 힘입어 점차 그 전력을 정비, 강화하기 시작하였고, 1950년 7월 22일에는 제1공병단을 제1야전공병단으로 개편하여 전투공병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하는 등 미군의 공병 편제를 참조하여 야전공병, 건설공병 및 기술공병 체제로 발전시켜 나갔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공병은 1953년도 휴전시까지 5개의 야전공병단과 3개의 건설공병단, 그리고 1개의 기술공병단으로 증강되었고 병력도 25,000명 수준으로 증가되었다.

 

전쟁초기 공병은 대규모의 조직적인 작전은 실시되지 않았으나 최전방에서 장애물설치, 폭파, 통로개설, 기동로 보수 등 공병지원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아군의 성공적인 작전에 기여하였다. 특히 영천지구 전투에서는 제8사단 공병대대가 투입되어 보병전투를 한 결과 적을 격퇴시키는데 성공하여 적으로 하여금 재 반격 능력을 상실케 하고, 군단의 병참선 확보 및 수도사단의 안전한 철수에 기여하였다. 이후 총 반격에 들어간 낙동강도하작전 시에는 부족한 장비 등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급조도하장비를 설치하고 현지 자재를 사용하여 임시 가교를 설치함으로써 차량과 장비의 도하를 가능케 하였으며, 대동강 도하작전으로 제1사단이 평양에 최초로 입성케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전쟁의 시련기를 통해 공병의 ‘희생정신’과 ‘화목단결’의 공병전통을 확립하고, 휴전이 성립되자 초토화된 군사시설과 국토재건을 위한 장비의 도입, 군단 공병부 설치를 비롯한 추가적인 건설공병단 및 야전공병단 창설 등 부대편제의 증편 및 창설로 기능을 대폭 증가시킴은 물론 국가재건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1958년 3. 11일 군 공사집행지시 제 13호에 의거 제1201건설공병단 예하 305건설공병대대 제 13중대의 병력으로 착공한 육군본부 본관공사는 1958년 9월 23일 완공되어 공병 건설 기술의 우수성을 전군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시기에는 새로이 창설되는 부대의 시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병병과의 가장 큰 업무였다. 또한 휴전선 일대의 반영구적인 축성공사를 비롯하여 4대 간선도로의 확장공사와 새로운 보급로 신설 및 각종 교량건설 및 보수에 주력하였다. 한국전쟁은 우리국민의 인명을 수없이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귀중한 재산도 파괴시켰다. 그 결과 당장 생활하는데 필요한 주거시설은 물론 병원, 학교, 고아원 등 공공시설이 매우 부족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공병은 민간건설업체의 건설기능이 미비하던 1950년에서 1960년대에 공공시설, 특히 교육시설 건축을 중점적으로 지원하였다. 1960년대 초 사회의 어느 조직보다도 최신 장비와 축적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공병은 국가의 국토개발사업에 참여하여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기여하였다.


이중 경부고속도로 건설 사업에 참여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었다. 우리 공병은 서울에서 수원 구간에 있는 “달이내 고개” 구간을 비롯하여 고속도로 공사구간에서 가장 어려운 난공사지점에 투입되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와같이 공병은 “싸우면서 건설하고 건설하며 싸운다”는 전통을 수립하면서 국가재건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우리나라 근대화에 선봉병과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다.

 

 

 

세계속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인

전장(戰場)의 시작과 끝을 지배하는 공병!


조국의 근대화와 함께 성장해온 공병은 1971년에 각 군단에 공병여단이 창설되고 1978년에는 4개 야전공병단을 창설하였으며 육본 직할부대로 1901도하단과 1113 야공단을 창설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공병부대로 발전하였다. 오늘날 공병부대는 사단 공병대대를 비롯하여 군단급에 공병여단이 또한 군사령부 및 작전사를 지원하는 공병단이 각각 편성되어 운용되고 있으며 과거 지도창이 지형정보단으로 개편되어 지형정보지원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림에서 보는바와 같이 공병 병과 마크는 1971년부터 사용되고 있으며 고대 성곽은 축성 / 건설을 의미하며 칼은 전투병과를 의미한다. 병과 마크에서 볼 수 있듯이 공병은 전투 임무를 수행하면서 또한 전투근무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뿐만 아니라 그 임무의 특성상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병과이다. 이러한 공병병과의 활동은 전시에는 제병협동부대의 일부로써 기동부대가 작전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작전수행능력을 향상시켜 결정적 작전을 수행하는데 기여하기위해 5대 기능(기동지원, 대기동지원, 생존지원, 지형정보지원, 일반공병지원) 분야에서 활약하며 평시에는 국가시책 지원 등 전쟁
이외의 군사활동을 지원한다.

 

 

기동지원, 대기동지원, 생존지원,

지형정보지원, 전투근무지원,

육군 공병의 5개 기능을 알아보자!

 

먼저 기동지원은 전장의 선두에서 기동부대보다 앞서 투입되어 적이 설치한 지뢰지대, 파괴된 교량, 하천과 같은 각종 장애물을 극복함으로서 기동여건을 제공하는 것으로 지뢰제거선형장약(MICLIC), 교량전차(AVLB), 간편조립교(MGB), 리본부교(RBS) 등을 운용한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한강상에서 부교를 설치하여 하천을 건너가고 있는 전차부대나 보병부대의 훈련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군부대 훈련에서 가장 많이 소개되는 것이 바로 도하작전이기 때문이다. 도하작전은 하천이 횡으로 발달된 우리나라 지형에서는 그 중요성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중요한 작전의 하나이다. 이러한 도하작전에서 교량이 파괴되어 건널 수 없는 큰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문교나 부교를 운용하는 것이 공병이다. 문교는 뗏목과 같은 것으로 장비를 실어 나를 수 있도록 구축된 것을 말하며 부교(浮橋)는 글자 그대로 강상에 차량이나 장비가 건널 수 있도록 교량형태로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도하지원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공병의 임무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도하지원을 위하여 공병은 리본부교(RBS)를 편제하여 운용하고 있고, 공병여단 및 단에 편제된 도하대대 또는 중대에서 전문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도하작전시 교 및 리본교를 구성하는 교절과 수송차량>

 

<도하작전중 문교와 부교를 운용중인 공병부대>

 

 한편 이러한 기동지원을 위한 교량설치나 지뢰제거 기술들은 수해 등 자연재해로 인해 교량이 끊어진 지역에 신속하게 투입되어 임시 복구를 실시하는 등의 대민지원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으며, 평시에 국토개발이나 민간인의 안전을 위하여 기설치된 지뢰나 미확인 지뢰지대내 지뢰를 안전하게 제거함으로써 국민의 군대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지뢰제거 작업은 2000년 9월부터 2004년 말까지 약 4년 동안 경의선 및 동해선 연결을위하여 비무장지대 내에 산재되어 있었던 약 8천여점의 지뢰를 수거, 처리하여 성공적인 도로 및 철도연결을 보장한 사업이었다.

 

 

▲ 육군공병학교 실물폭파훈련장에서의 미클릭발사장면


방어시 전장에서 끝까지 남아 적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지뢰지대, 철조망 등과 같은 각종 장애물 설치할 뿐 아니라 전투간 아군이 모두 철수할 때 까지 남아서 적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도록 통로를 봉쇄하고, 중요한 시설물들을 폭파시켜 적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거부작전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바로 대기동지원이다. 이러한 대기동지원 개념은 기동지원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공병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전장에 끝까지 남아 마지막을 책임진다. 공병은 이를 위하여 전문적으로 폭파교육을 받고 있으며, 대규모 교량이나, 비행장, 댐 등을 거부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있다.

 

 

또한 전장에서는 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여 얼마나 빨리 대응하느냐가 승패와 직결되기 때문에 대기동지원에 있어서도 실시간 적이 아군 방어지역을 돌파하였을 경우 적이 기동을 저지시키고 증원부대를 차단시켜서 아군의 역습을 지원하기 위해 신속히 설치가능한 기동장애물을 발전시키고 있다. 공병은 신속히 도로대화구를 설치할 수 있도록 개발된 KM-180 도로대화구 폭파킷, 신속한 지뢰지대 설치를 위한 지상지뢰살포기(KM138), 적지종심지역에 장애물을 설치할 필요가 있을 경우 포병을 활용한 포투발식 살포식 지뢰(ADAM, RAAM) 등의 무기체계들을 대기동지원을 위해 운용하고 있다.

 

 

<한국형 지뢰살포기 Mine Disperser>

 

 전장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투력을 보존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병 5대 기능중 하나인 생존지원은 전투진지 및 방호시설의 구축 또는 기술조언, 적의 관측과 화력효과를 감소시키기 위한 위장 및 기만시설 설치지원 등을 통하여 부대의 생존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활동을 한다.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평시부터 공병은 공병부대에 편제된 장갑전투도쟈, 다목적 굴착기, 포크레인 등의 중장비들을 운용하여 포병진지 구축, 각종 보급시설 구축 등을 훈련하고 있다.  “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생명체의 활동공간이자 인간의 창조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이는 군사작전에서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공병 5대 기능중 지형정보지원은 지형 및 공간적인 현상을 기상 및 기후의 영향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지형평가요소에 의하여 분석한 자료를 현행 및 장차작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세부 기능에는 공병정찰, 지형정보제작, 지형분석을 포함하고 있다. 이중 과학기술의 발달과 지형정보 사용자의 요구가 다양화됨에 따라 지형정보제작과 지형분석 분야의 범위와 역량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최근까지 우리 군에서의 지형정보라 함은 종이지도의 생산 및 분배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었다. 하지만 각종 첨단기술, 지형정보 연구인력의 노력, 지형정보 사용자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보요구가 결합되어 다양한 형태의 지형정보가 지원되고 있다. 공병은 기존의 종이지도와 같이 출력물로 지원하던 지형정보를 디지털화하여 전산기기를 이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분석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디지털 지형정보의 생산은 그동안 경험과 직관으로 진행되던 지형분석을 컴퓨터를 활용한 시스템화된 지형분석으로 그 역량을 확대시켰으며, 이에 따라 사용자 맞춤형 지형정보 (Customized Geo-Product) 생산을 가능하게 하였다. 예를들어 집중호우시 수몰예상 지역을 분석하여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임무를 가능케 하였다.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전투근무지원 분야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보듯이 미군의 압도적인 승리는 전투근무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전투근무지원 분야중 기동부대의 작전지속능력을 보장하기 위한 군 시설건설 및 유지, 병참선 건설 및 유지, 지역피해복구 지원, 급수지원, 전력지원, 환경보전활동 등의 역할을 하는 것이 일반공병지원 기능이다. 일반공병지원은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고 복잡하다. 특히 전시뿐만 아니라 평시에 그 역할과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는 분야이다. 군 시설은 휴전 후 건립된 콘셋막사를 포함하여 1960년도 이후에는 군 자체 병력으로 건립한 블록스레이트 건물이 73%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국민생활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현대화 사업을 적극 추진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대화 사업 추진의 중심에는 역시 공병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국민소득의 증대에 부응하도록 침대형 생활관을 비롯하여, 급수시설, 목욕탕, 취사식당 등과 같은 현대식 편의시설을 갖춘 병영생활관으로 발전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GP 및 GOP 등과 같은 격오지 시설도 개선함으로써 근무장병들의 사기진작과 복지향상에 기여하였다. 또한 군 아파트 및 관사 건립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평수를 상향조정하고, 고층아파트 신축, 부대 인근지역에 신축되는 아파트를 매입하여 군 자산의 증대와 관리유지비 소요를 줄여 예산 절감으로 더 많은 혜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등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에 노력하였다.

 

 

과거 선배들이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의 국책사업에 참여하였던 공병은 오늘날에도 크고 작은 국책사업에 참여하여 많은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1990년에 시작한 자유로 사업을 비롯하여 시흥-안산간 고속도로 공사, 남 북 연결도로 공사(1, 3번 국도 확장공사), 백령도 및 대청도 도로공사, 강화도 순환도로 공사 등에 투입되어 공병병과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하였다. 최근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환경분야에서도 공병이 선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병은 1, 3군 예하 1개 대대씩 환경대대를 공병단 예하에 편성하였고, 2작사 예하에는 2개 중대가 환경부대로 활동하고 있다.


환경부대들은 서해안 오염사고를 비롯한 크고 작은 환경오염 제거 및 방지활동에 투입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일반공병지원 기능에는 전평시 피해복구활동이 포함된다. 이를 위하여 공병부대는 평시부터 도쟈, 포크레인, 덤프트럭 등 중장비를 운용하고 있다. 또한 전군에서 유일하게 심정을 굴착할 수 있는 장비를 보유한 병과로서 급수시설이 열악한 격오지 부대의 심정을 착정해 줄 뿐아니라 가뭄시에는 대민지원을 실시하여 먹는물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병병과는 우리 군의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여 왔으며, 전평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병과로서의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

다. 이러한 병과 기능의 특징으로 인하여 공병은 우리 군의 해외 파병시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세계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공병의 해외 파병역사는 우리 군의 파병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최초로 파병되었던 월남전에도 공병이 참전하여 전술도로 개설, 교량 및 헬기 착륙장 건설, 도하작전 지원 등의 전투지원 임무 뿐만 아니라 월남 평정사업계획에 의한 대민지원 공사와 기지내 전술적인 공사지원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국제 평화유지활동(PKO)의 일환으로 창군이래 처음으로 아프리카 소말리아에 공병1개 대대가 파병되었다. 1993년 7월 파병을 시작으로 1994년 3월까지 파병된 공병대대는 주요 도로공사, 관개수로 작업, 사랑의 학교 운영 등으로 국위를 선양하였으며, 이어서 1995년 9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앙골라에 공병1개 대대를 파병하여 교량복구, 비행장복구, 대민지원, 태권도 학교 운영 등 많은 지원활동을 수행하고 귀국함으로써 국제사회에 한국군의 위상을 제고시켰다. 이후 1999년에는 동티모르 국제평화유지군의 일환으로 파병한 상록수 부대 공병대가 파병되어 전기, 급수, 도로부수 등 각종 피해복구활동을 수행하였다. 아프카니스탄전 이후 ’03년부터는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다산부대(100건설공병대대)가  아프카니스탄 바그람에 파병되어 활주로 포장 및 확장공사, 학교보수, 대민지원, 학교건립사업 등을 지원하였다.

 


또한 이라크 전후 ’03년 4월부터 이라크에 서희부대가 파병되어 활동하다가 자이툰 사단이 파병됨에 따라 자이툰 사단 공병대대로 편성되어 임무를 계속 수행하였다. 이라크에서의 공병부대 활동은 주둔지 시설공사를 비롯하여 기술교육센타 지원, 재건지원 사업 공사감독 등의 임무를 수행하여 우리 공병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하였다. 또한 대규모 지진 참사가 발생한 아이티에 대한 피해 복구와 재건 지원을 위해 공병중심의 평화유지활동(PKO) 파병을 추진하였다.
이와같이 공병은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속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국가와 우리 군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위풍당당한 병과로 도약의 나래를...

 

시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우리 군도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요구속에서 공병도 지속적으로 변화하면서도 선배들이 이어온 병과정신을 면면히  이어 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첫째로 장비위주의 공병으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 공병병과 병사들은 삽 한 자루를 닳아 없애야 제대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와 같이 과거의 공병 선배들은 오로지 열정과 패기만으로 도전하여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임무를 수행하여 왔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공병장비들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에 부응하여 공병도 과학화된 장비위주의 병과로 거듭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교량장갑차>

 

인력으로 지뢰지대를 설치하는 재래식 지뢰지대는 세계적인 요구에 의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으며, 이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살포식 지뢰체계로 발전되고 있고, 원격운용통제탄이나 기동저지탄과 같은 지능형 지뢰들이 도입되어 운용될 것이다. 이러한 지뢰들의 발전은 장애물을 설치하는 병력 소요를 대폭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고, 설치시간도 대폭 축소시킴으로 장애물 운용의 효과를 극대화 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동지원을 위한 장비들도 비약적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 예로서 차기전술교량은 10여명의 공병이 60미터의 교량을 90분 이내에 설치할 수 있는 장비로서 향후 공병의 교량설치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자주도하장비는 문교와 부교의 구축시간을 단축시키고 신속한 도하지원을 가능케 하며, 장애물 개척전차는 적의 다중 복합 장애물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획기적으로 발전되고 있는 분야는 지형분석분야이다. 과학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지형정보 획득 수단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으며, 획득을 위한 대기시간도 근실시간대 가능해지고 있다.


지형정보 수집과 함께 지형정보 분석 도구가 다양화되고, 지형분석가의 경험이 축적됨에 지형정보지원의 중심이 생산자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지형정보지원 부대의 생산능력이 지형정보사용자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는 갖고 있지만, 지속적인 인적, 물적 지원이 확보된다면
그 차이는 점차 좁혀지리라 판단된다. 특히, 사단 공병대대에 편제될 한국형 디지털지형정보 지원체계(KDTSS)의 전력화와 정착은 최종사용자(End-User)중심의 지형정보지원체계 정착의 초석이 될 것이다.


KDTSS의 효과 극대화를 위한 공병정찰 장비들이 전력화 되고 전문인력 계발이 더해져 그 승수효과(乘數效果)는 배가될 것이다. 향후 이러한 공병장비들이 전력화되어 야전에서 운용될 공병병과는 첨단 장비위주의 병과로 새롭게 거듭날 것이다. 둘째는 전문성의 강화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장비를 운용할 전문기술이 요구됨은 물론이고 공병에서 수행하고 있는 임무들도 새로운 기술과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병과의 전문성 강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예를 들면 교량을 폭파함에 있어서도 교량건설의 공법들이 발전됨에 따라
새롭게 바뀌고 있으며, 대형 교량들이 많아져 폭파방법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또한 군 시설 건설 및 유지를 위해서도 빠른 속도로 발전되고 있는 각종 신 공법을 이해하고 적용해야 하며, 전자기파 방호를 위한 시설을 설계하는 등의 새로운 개념의 기술과 공법들을 연구하고 적용해야 하는 등 전문성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 부합되도록 공병병과는 시설조직을 별도로 편성하여 전문성을 강화하는 등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 될 것이다.

 

 공병병과의 역사가 우리나라의 발전과 함께 하였듯이 우리나라가 발전하고 군이 발전됨에 따라 공병병과에 대한 중요성도 더욱 확대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나갈 것이다. 공병병과가 군 발전의 시작을 담당하였던 것과 같이 그 끝도 공병 병과의 몫이 아닐까 한다.

 

자료협조 : 육군공병학교 정훈공보실

임영식기자 <국방홍보원 블로그 어울림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