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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년] 애국애족 DNA 독립투사의 피는 뜨겁다

국방홍보원 2015. 8. 13. 18:25

이호열 육군중위와 신범수 육군이병ㆍ김도현 해군소위(사진 왼쪽부터)가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경내를 걸으며 독립운동가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 ‘암살’이 관객 1000만 명을 바라보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광복 70주년’과 영화 흥행이 맞물리며 독립운동, 그리고 열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영화에서 독립운동가들은 피땀 흘려 대한민국을 지키려 했고, 고난과 유린의 세월을 겪어야 했다. ‘광복’은 이름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고 산화한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에서 비롯됐다.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부르거나 태극기를 제작해 배포하다 옥고를 치르는 등 이름 모를 독립운동가들이 곳곳에 있었다. 우리 군에서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그 애국정신을 이어받아 조국을 지키고 있다. 육군15사단 이호열 중위, 육군1117공병단 신범수 이병, 해군교육사령부 김도현 소위를 지난 7일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만나 독립운동가 선조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린다.

 이호열 중위(이하 이 중위): “2013년 3월 1일 육군소위로 임관해 현재 육군15사단 정훈공보부에 근무하고 있는 이호열(26) 중위입니다. 사단 공보장교로 임무를 수행하며 부대 공보 및 홍보활동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이호열 중위


 

 

 

 

 

“만세운동 이끈 이진규 증조부님 … 혹독한 고문 당해

후학 양성 앞장선 증조부 따라 사범대 진학·장교 임관”

 


 신범수 이병(이하 신 이병): “지난 5월 4일 입대한 육군1117공병단 183대대 신범수(21) 이병입니다. 현재 총기탄약관리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김도현 소위(이하 김 소위): “육군 병사로 2006년에 입대해 병장으로 만기전역 했고, 이후 2011년 공군 부사관으로 입대해 3년간 복무했습니다. 해군 장교가 되고 싶어 지난 6월 1일 임관해 현재 해군교육사령부에서 함정초군반 교육 중인 김도현(30) 소위입니다.”

-독립운동을 펼쳤던 선조들은 어떤 분이셨고, 당시 어떤 활동을 하셨나?

 이 중위: “독립유공자(애국지사)이신 이진규 증조부님은 1919년 지금 저와 같은 나이인 스물여섯에 고향인 충남 홍성군 홍성시장 등지에서 일제에 대항해 태극기를 제작하고 배포하면서 독립만세운동을 이끌다 일경에 체포되셨습니다. 혹독한 고문과 함께 일제 조선총독부가 1912년 하달한 훈령인 ‘조선태형령’에 따라 태형 90대를 당하셨다는 내용이 당시 일제의 문서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태형에 대해 조사해 본 결과, ‘태(笞)’의 끝에는 납덩이가 달려 있어 맞으면 살이 터지고 납독이 올랐으며, 한번 태형을 당하면 최소한 몇 달 동안 자리보전을 해야 했고 잘못하면 불구가 되거나 죽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후 1920년 공주사범학교(현 공주사범대)에서 수학하고, 1925년부터 공립 강경보통학교와 금마보통학교, 공주 영명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셨습니다.”

 신 이병: “고조부 신경화님과 증외조부(증조모의 아버지) 김민두님이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두 분은 전북 남원시 덕과면 덕촌리와 덕과면 신양리에 거주하셨으며, 증조부와 증조모를 혼인하게 해 사돈지간이기도 합니다. 1919년 4월 3일 남원에서 동네사람들을 이끌고 만세운동을 하셨고, 이후 일제의 검속에 걸려 6개월의 옥고를 치르셨습니다. 증조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일가친척들은 고조부님이 옥고를 치르신 것도 모르고 살아오다가 몇해 전 관내에 세워진 만세운동기념탑에 새겨진 이름을 확인, 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후 대전기록관리소에서 판결문을 찾아 지난 2004년 독립운동이 인정됐습니다. 증조모의 아버님은 슬하에 딸만 6명을 두셨고, 따님들이 각 지역으로 출가하거나 돌아가셔서 독립운동을 하신 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국가보훈처에서 한 ‘유공자 후손 찾아주기’에서 독립운동가로 확인됐습니다.”

 김 소위: “일제강점기 독립군 무장투쟁 역사상 가장 큰 승리로 평가되는 청산리전투를 지휘하신 백야 김좌진 장군이 증조부이십니다. 저희 할머니는 할아버지이신 김두한 전 국회의원(3·6대)의 둘째 부인으로 2남1녀를 두셨고, 저희 아버지가 차남입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증조부와 청산리전투에 대해 많은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증조부께서 무장독립운동 중 공산주의자의 흉탄을 맞고 이역만리 중국땅에서 순국하셨다는 말을 듣고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도현 소위


 

 

 

“증조부는 백야 김좌진 장군 … 청산리 전투 지휘 활약

해군장교로서 조국 바다 사수에 모든 열정 바칠 것”

  

 -선조의 어떤 점을 배우고 싶나?

 이 중위: “어렸을 때부터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셨던 증조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2005년 증조부님께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신 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조국에 헌신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증조부님과 조부님께서 수학하신 공주사범대에 대를 이어 진학하고, 졸업 후 장교로 임관한 것도 그러한 생각이 많은 영향을 미쳤고요. 자신의 안위보다는 조국을 먼저 생각하면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증조부님의 애국정신과 희생정신을 계승해 대를 이어 조국에 봉사하고 싶습니다.”

 신 이병: “3·1운동은 일제의 억압적 통치에 항거한 전 민족적인 운동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민족운동에 투신하신 고조부님과 증외조부님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됩니다. 저도 국방의 사명을 짊어진 국군 장병으로서 선조들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배워 마음속에 굳게 지니고 싶습니다.”

 김 소위: “인생을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가치는 개인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저는 증조부님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만큼 가치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군 생활을 할 때 마음가짐이 다를 것 같다.

 이 중위: “임관 전 후보생 시절에도, 장교로 임관한 후에도, 증조부님이 잠들어 계신 현충원을 방문해 인사드리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증조부님께 부끄럽지 않은 명예로운 군인이 돼야 한다는 초심을 다시금 상기하고, 저의 언행 하나하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전투복을 착용할 때 오른팔에 부착된 태극기를 볼 때마다 증조부님을 비롯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신범수 이병


 

 

 

“신경화 고조부님·김민두 증외조부님 만세운동으로 옥고 

기념탑의 이름 보고서야 사실 확인 … 애국정신 이을 것”

 


 신 이병: “평소 저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독립운동가들에 관한 영화나 드라마들을 즐겨 보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만약 저 시대에 살았다면 용기 있게 저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하셨던 분들 중 두 분이 제 조상님이라는 사실이, 현재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인 저에게 바른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해 줍니다.”

 김 소위: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마음에 희망과 등불이 됐던 증조부의 발끝에도 미칠 수 없지만, 조국의 바다를 지키는 해군장교가 된 지금 저는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자세로 군함을 타고 조국의 바다를 지키는 일에 저의 모든 노력과 열정을 바치겠습니다.”

-지금 선조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중위: “피땀으로 되찾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손자가 대를 이어 지켜 나가겠습니다. 증조부님께 부끄럽지 않은, 명예로운 군인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신 이병: “감사합니다. 당연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을 하셨고 덕분에 저희가 더 자랑스러운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두 분의 애국심을 이어받아서 대한민국을 잘 지키겠습니다.”

 김 소위: “가족 관계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조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해군 장교로서 존경한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각오와 계획은?

  이 중위: “자만하지 않고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승리부대를 전 육군에서 가장 브라이트(BRIGHT)한 부대로 만들고,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신 이병: “군 생활 건강하게 마친 뒤 성공한 CEO로서 멋진 삶을 살고 싶습니다.”

 김 소위: “육군 병사와 공군 부사관에 이어 해군 장교로서 새로운 출발점에 섰습니다. 증조부의 이름을 딴 잠수함 ‘김좌진함’이 취역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해군장교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모든 역량과 노력을 쏟아부어 대한민국 해군에 기여하는 장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