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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사항

2012/05/18 14:04

용산 전쟁기념관을 지나다 벽을 허물어 여느때와 달리 시원하게 보이는  전쟁기념관을 보고  바로 차에서 내렸습니다.

전쟁기념관이 전쟁기념관 입구 담장을 허물어 조성해 온 1만2천㎡ 열린 시민공원이 6개월간의 공사를 마치고 시민들에게 개방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1~1.2m 높이 화단형 담장으로 둘러싸였던 전쟁기념관은 시민과 더 가까워지게 돼 역사적인 상징의 기념관과 녹지가 어우러진 열린 시민공원이 마련된 것입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예전 정문앞에 세워져있는 625전 50주년 기념조형물이었습니다.

<이 조형물은 6ㆍ25전쟁 휴전 50주년을 맞이하여 "6ㆍ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단"에서 기획 설치한 조형물로 유구한 역사와 민족의 번성을 상징하는 "청동검과 생명수 나무", 국군, 참전외국군, 국민방위군, 유격대, 학도병, 피난민 등을 묘사한 "원호형 조각군상 : 6ㆍ25전쟁의 전황과 고난을 조각", 화강석 바닥의 균열을 통해 휴전선을 묘사한 "접시형 기단부 및 반지하 마당", 개별 국가 상징을 담은 참전 21개국 기념조형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 6ㆍ25전쟁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전쟁의 아픔과 슬픔을 회상하며, 참전 용사를 추모 선양하고, 현재 국난 극복 의지 및 역량을 결집하고 6ㆍ25전쟁 전후세대에게 안보의식을 고취시켜 전쟁 재발 방지를 다짐하며 미래 평화통일 기반을 조성하고 세계속에 한국의 신인도를 제고시켜 세계로의 도전과 미래창조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전쟁기념관에서 바라다 보이는 남산타워의 모습입니다. 오늘따라 삼각대를 휴대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됩니다. 삼각대를 가져왔으면 더욱 좋고 많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을텐데 좀 아쉬웠습니다.

6ㆍ25전쟁 당시 국군장교인 형과 북한군 병사인 아우가 전쟁터에서 극적으로 만난 실화를 소재로 남북의 분단과 대립을 화합과 통일로 승화시키려는 민족의 의지를 표현한 조형물인 형제의 상, 밤에 보름달에 비치는 형제의 상을 보니 더욱 안타까운 전쟁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합니다.

출입구 역할을 하는 좌우와 도로변에는 4.5m~6m정도의 앉음벽 18개를 설치하

고 공원 곳곳에 등의자 12개 등 휴게시설을 마련해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관람객

들과의 편의를 도모하여 그동안 닫혔던 전쟁기념관 앞마당은 이제 열린 공간으

로 재조성 돼 역사와 문화의 중심거리에 시민을 위한 또 하나의 휴식․소통 공간

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지난 25일 강원도 출장후에 돌아오며 달라진 전쟁기념관과 벛꽃도 촬영하여 같이 포스팅 할겸해서 다시 전쟁기념관을 찾았습니다. 이른 아침에는 그리 많지 않은 비가내려 한시간정도 촬영은 가능하겠다 싶었는데 이런~~~시간이 갈수록 비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촬영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마음은 아쉽지만 벽이 사라져 낙 트인 전쟁기념관의 모습은 정말 시원스러웠습니다.

 

달라지는 전쟁기념관

또한 전쟁기념관은 기존에 기념품점으로 운영하던 전시실 입구의 공간을 새단장을 마치고 ’카페M’으로 오픈했습니다. 전쟁기념관 특별전시실 입구에 자리한 ’카페M’은 50여 평 규모에 60석의 좌석을 보유하고 있으며 카페와 함께 기념품점도 새롭게 단장되었습니다.

카페M에서는 바리스타가 정성을 담아 만든 커피와 각종 음료, 샌드위치, 머핀, 조각케잌 등 다양한 간식을 판매하고 있으며, 기념품점에는 장신구, 문구류 등 세련된 기념품과 어린이들에게 인기있는 조립키트 등 기념관 방문을 추억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기념품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카페에는 자유롭게 보실 수 있는 책도 비치되어 있으니 관람하시다가 지친 다리를 잠시 쉬어가시기 바랍니다. <전쟁기념관 홈페이지참조>

<전쟁기념관이 6ㆍ25전쟁실을 리모델링해 12일 재개관하는 데 맞춰 김관진(앞줄 왼쪽 둘째) 국방부장관과 백선엽(왼쪽)예비역 육군대장, 선영제(왼쪽 셋째) 전쟁기념사업회장 등이 전시된 야포와 박격포를 살펴보고 있다. 국방일보 이헌구 기자 >

아울러 전쟁기념관은 이번 6․25전쟁실 리모델링 이후에도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유엔실, 전쟁역사실, 호국추모실 등 기념관 전시실을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전쟁기념관, 스토리가 있는 전쟁기념관, 가슴으로 느끼는 전쟁기념관”으로 새롭게 탈바꿈하게 될것입니다.

 

임영식기자 <국방홍보원 블로그 어울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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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배나온슈퍼맨

2012/05/17 11:08

자율병영생활관 제도란?

제목과 같이 더더욱 밝은 병영생활과 전투력손실을 막고자, 최근 새로 도입되는 국군의 병영생활 제도이다. 최대한 동기들끼리 한 생활관에 넣는 것으로, 이등병은 이등병끼리 병장은 병장끼리 같은 생활관에서 병영생활을 하는 것이다. 특히, 일과시간 이후에는 생활관으로 퇴근한다는 개념으로, 좀 더 편한 병영생활을 위하여, 도입되는 제도이다.

 

 

                                                                                  <사진 : 국방저널>

 

2012년의 봄도 살며시 다가와 어느 덧, 우리 곁에 서 있다. 지난겨울 동안 움츠렀던 몸을 활짝 펴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지금, 육군에서도 새로운 병영생활을 위해 엄청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요즘 언론에서는 ‘경계근무 중 자살’, ‘이등병 자살’ 등 군인들의 자살사고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러한 군인들의 자살은 왜 일어날까?

 

 

군인들의 자살은 스트레스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에는 여친의 변심, 가정환경의 변화, 경제적 어려움등이 있지만, 이들보다도 더욱 손꼽히는 요인은 선임병의 갈굼과 군생활 적응의 어려움이 손꼽히고 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이를 혼자 앓고 고민하다보면 결국 대인기피증, 흥미감소, 식욕부진등의 증세를 보이다가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남들과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살 사고의 주 원인인 선후임간의 갈등을 막기 위해 육군에서는 같은 동계급끼리의 생활관 제도인 자율병영생활관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자율병영생활관 제도의 장점

후임병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선후임간의 생활관이 나뉘게 되면서, 일과 후에는 동기들과 편안한 생활관에서 생활하게 되므로, 심리적인 안정효과로 인해 교육 및 훈련에서의 더더욱 뛰어난 성과를 올리는 심리적 기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특히, 선임병들에게 억눌리는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이것은 후임병들에게는 꼭 필요한 제도이다.

 

출퇴근 형식의 병영생활로 활기찬 병영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자율병영생활 제도는 출퇴근 형식의 병영생활로 일과 후에는 마음 놓고 쉴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일과 후 출퇴근 형식의 병영생활은 제한되지 않는 휴식을 부여함으로써, 휴식의 질을 높이며 동기들 간의 전우애가 강해지므로 더더욱 활기찬 병영문화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자율병영생활관 제도의 숙제

후임병의 자대 적응이 늦춰지고 선후임 간의 거리가 멀어진다.

갓 들어온 이등병들은 상병, 병장 등의 선임병을 보면서, 군생활의 노하우나 훈련간의 필요한 물자 같은 것들을 물어보면서 미리 준비하고 자대 적응을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생활관이 달라지고 하다보면, 이러한 것들을 바로바로 물어볼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등병들은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이등병이나 일병들에게 물어보게 될 것이고, 자대경험이 비교적 적은 일병, 이등병들에게 조언을 받다보면, 결국 그만큼 자대 적응이 늦어지며, 나아가 병영생활 부적응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후임병의 자대 적응이 늦어지지 않도록  선임병들의 더더욱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선임병들의 깊은 관심이 이등병을 포함한 후임병들의 자대 적응을 빠르게 할 뿐만 아니라 더더욱 밝은 병영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분대, 소대, 중대의 건제가 깨진다. 

아무래도, 이 제도를 실시하면, 기존의 건제순의 생활관이 바뀌게 되므로, 이러한 건제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에 맞게 교육훈련과 건제 유지를 위한 분대, 소대별 단합대회의 빈도를 높여 더더욱 뭉칠 수 있는 시간을 반영한다면, 더더욱 밝은 병영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자율병영생활관 제도와 함께 건제단합활동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위 표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선임병들 그룹에 속하는 상병과 병장의 만족도는 상당히 낮다. 하지만, 병영생활 안전사고 사고율이 높은 일병과 이등병의 만족도는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러한 점을 봤을 때 우리는 이 제도가 결코 효과가 없는 제도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율병영생활관 제도의 목적은 병영생활의 안전사고 예방을 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선임병들 간의 병영생활 안전사고 등의 또 다른 병영생활 안전사고를 야기할 수 있으며, 교육훈련 간의 비효율적인 생활관제도라는 반대의견이 아직 많다. 하지만, 전쟁도 치러보기 전에, 사회로 돌아가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 우리 국군장병들을 이대로 방치할 수만은 없기에 이런 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원래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선 수많은 반대를 수용하여 보완점을 찾아 개선하고 또 개선해야한다. 자율병영생활관 제도가 보완점을 더욱 강화하여 우리 주위에 있는 국군장병들의 목숨을 지키고 기존의 병영생활관 제도보다 활기찬 병영생활을 만들 수 있는 제도로 발전해나가길 기대해본다. 

 

                          <국방홍보원 블로그 "어울림" 기자단 : 박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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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울림 국방홍보원

2012/05/16 10:22

정지훈 일병(가수 ‘비’)처럼 군부대에서 ‘특급전사’가 되려면??

 

지난 3월 홍보지원대로 전입한 정지훈 일병 인터뷰 당시 (기사보기-홍보지원대 전입 온, 가수 비를 만나다.) 전입 전, 야전부대에서 특급전사로 선발되어 진급을 빨리하였다고 하였었다. 그것에 대해 질문하니, 정지훈 일병은 "군대는 남자라면 누구나 와야하는 의무이다. 여러가지 훈련을 최선을 다해서 잘 받았다. 그리고 특급전사가  된 이유는 다름아니라 휴가가 걸려있었다. ^^ 나 뿐만 아니라 모든 병사들이 마찬가지였을것이다. 정말 이를 악 물고 열심히 하였다. 원래 오래달리기를 잘 못하는데, 조금 과장된 말로 거의 모든 장기를 내놓고 뛰었다고 할 만큼 정말 힘들게 뛰어서 특급전사가 되었다. 다행이 사격은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것 같더라. 사격점수도 잘 받아서(20발 중에 19발) 특급전사가 되었고 보람있었다."라고 말하였었다. 

 

 

그럼 특급전사라는 것은 무엇일까?

특급전사? 라고 하면 왠지 뭔가 무시무시한 ‘강한 군인’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도 특급전사에 도전에서 바로 문턱(?)까지는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얘기하자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대한의 건아, 대한민국 남자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혹은 어차피 군 복무를 해야 한다면, 인생에서 한번쯤 ‘특급전사’에 도전해보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준비해보았다. 현재 특급전사에 도전해서 여러 관문을 통과하고 ‘개인화기 사격 평가’만을 남겨둔 현역 병사 ‘박원길 일병’을 만나보았다. 군 입대를 앞둔 청년들에게 특급전사가 되려면 어느 정도의 체력을 요하는지, 특급전사의 혜택이 무엇인지를 모조리 알려주겠다.

 

 

                                                           <특급전사 포스 작렬-박원길 일병>

 
자, 그럼 지금부터 ‘박원길 일병’을 따라 특급전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들어보겠습니다.

 

Q. 특급전사는 어떻게 도전하게 된건가?

사실 입대 전 주위에서 ‘특급전사’에 대해 얼핏 들었습니다. 군대에서 특급전사가 되면 포상휴가를 준다, 몇 가지 체력테스트에서 최고점수로 통과하고 사격 만발을 쏘면 된다는 등 동네 형들의 일명 ‘대충 정보’였습니다. 그 때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입대를 하고 군 생활을 하다 보니, 부대에서 특급전사를 선발 할 테니 지원자는 손을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문득 입대 전 동네 형들의 얘기가 떠올랐고, 휴가에 목말라있던 저는 번쩍 손을 들었답니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저는 특급전사가 되기 위해 체력관리에 들어갔어요. 개인정비 시간동안에 체력 단련 실을 이용하여 체력을 키우고 식단조절로 몸의 밸런스를 조절해나가면서 특급전사를 준비했습니다.

 

 

                                                                   <박원길 일병 운동하는 모습>

 

Q. 체력 단련실을 이용하고, 식단을 조절했다는 말은 분명 맞다. 하지만 기대를 하고 이 기사를 보시는 분들이 섭섭해 할 것 같다. 너무 식상한 내용인데, 좀 더 알찬 정보를 알려준다면?

입대 전, 불규칙한 생활에 3끼 식사를 잘 챙겨먹지 않으면서 제 자신도 모르게 몸이 약해졌습니다. 이로 인해서 군 입대할 당시 다시 “건강한 체형을 만들자”란 기본 목표의식이 생겼고, 거기에 “특급전사를 하자“란 특급전사에 대한 목표의식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져 계속해서 체력단련, 식단조절 등을 해오면서 관리를 철저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군대에서는 끼니를 거를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3끼를 든든하게 먹었던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훈련병 시절 모든 훈련에 열심히 임했습니다. 고된 훈련 후에 먹는 밥은 허약했던 내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었죠. 처음 전입을 와서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선임들의 눈치가 보였습니다. 그때, 지금의 최정욱 병장님의 도움을 좀 받았죠? 하하(웃음). 운동하러 가고 싶었는데 선임과 같이 하면 덜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죠. 평소 열심히 운동하시던 최정욱 병장님을 따라서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었답니다. 운동은 남군 체력검정 기준표를 보고 기록을 한 단계씩 강도를 올리면서 차근차근 준비를 했습니다. 사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입대 전부터 군 체력 검정 기준 표 대로 정확한 기록(개수/초)을 알고 있는 상태였더라면, 이번에 했던 특급전사를 준비하는 데 수월했을 것 같아요. 입대를 앞둔 청년들에게 이 기준 표는 분명 좋은 정보가 될 것 같아요.

 

 

                                               <전 군에 적용되는 (남군) 체력검정 기준표>


Q. 아~^^그때 기억이 난다. 웬 신병 놈이 같이 운동하러 가고 싶다고 해서 ‘이 자식 밖에서 운동 좀 꽤 했나본데~’ 했던 게 엊그제 같다. 하하(웃음).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께 분명 좋은 정보가 되리라 믿는다. 음.. 박원길 일병은 이제 특급전사의 마지막 관문 개인 화기 사격평가만을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의 포부와 다짐, 그리고 특급전사가 되서 받은 포상휴가증은 어떻게 사용할 건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일단 마지막으로 개인 화기 사격평가가 남아 있네요. 18발 이상 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제 자신을 믿고 차분하게 임할 것입니다. 사격을 할 때는 호흡을 멈추고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되기 때문이죠. 그동안 신병위로휴가, 1차 정기휴가 때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적었으니, 만약 특급전사 포상을 받게 된다면, 이번에는 가족들과 주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부모님께 가서 이렇게 건강하게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겠어요. 하하(웃음)

 

Q. 나도 박원길 일병이 멋지게 특급전사가 되어 원하시는 포상휴가 꼭 다녀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전국에 있는 군 장병들과 입대를 앞둔 청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저를 포함한 모든 국군장병 여러분, 힘드시죠? 전역하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화이팅! 해요!

 

여기서 잠깐~ ※ 군부대 ‘특급전사’란?       
각 부대 사정마다 다르지만 매년 분기마다 병사들을 대상으로 ‘자격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 자격인증제에는 특급(특급전사), 1급(전투프로), 2급(일반전투원)까지 자격인증서를 수여한다. 특급전사, 전투프로에 선발된 인원들에게는 부대 표창 및 포상휴가(특급전사 5일, 전투프로 4일)증을 부여한다. 또한 전투프로 이상 선발된 인원들은 1개월 조기진급을 실시하게 되며, 전투복에는 특급전사임을 나타내는 금색 태극기 오버로크를 달 수 있다.

 

이 자리를 빌려 인터뷰 요청에 적극 응해주시고 사진 좀 멋있게 찍어서 마음껏 뿌려달라는 ‘박원길 일병’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국방홍보원 블로그 '어울림' 기자단 3기 <최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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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울림 국방홍보원

2012/05/15 10:04

지난해, 2011년 국군의 날 이후로 우리 군에 디지털무늬 신형 전투복 보급과 착용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전 부대에 보급이 완료되지 않아 구형 전투복과 혼용하고 있습니다. 육군의 경우 지난 해 9월부터 신병들에게 신형 방한복 상의 외피(야전상의)를 지급하였고, 10월부터는 베레모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신형 전투복은 자대에 가서 받는데 전방부대부터 보급되고 있다고 합니다. 해․공군의 경우 디지털 무늬 전투모를 착용하는데 우리 부대 병사 중에선 아직 보급받은 인원이 없어 다음 기사에서 기능성 전투화와 함께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함께 보시겠습니다.

 

 

신형 전투복은 흙, 침엽수, 수풀, 나무줄기, 목탄의 5가지 색상과 국내 암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강암의 형태와 그 주변의 지형지물을 응용한 무늬가 결합된 ‘화강암 디지털 5도색’ 위장무늬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기존 얼룩무늬 4색에 비해 위장성이 뛰어나고 첨단 장비에 의한 식별도 더 어렵다고 합니다. 이렇게 외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소재 면에서도 구김 방지, 신축성 및 내구성 향상, 은나노 처리로 항균 기능 등 여러 가지 개선사항이 있습니다.

 

 

 

모델이 신형 방상외피를 지급받지 못한 관계로 기자의 것을 빌려주었습니다.

기자가 육군훈련소에서 경험한 바로는 신형 방한복 상의 외피가 구형 방상외피에 비해 기능적인 면에서 훨씬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훈련 시에는 구형을 입었는데 비가 조금만 와도 금방 옷이 젖어 무거워졌습니다. 수료식 후 면회 날도 비가 왔지만 신형 방상외피는 방수처리가 되어있어 빗방울이 다 흘러내렸습니다.

 

 

위의 사진과 같이 구형 전투복은 상의를 하의에 넣어 입는 방식이지만, 신형 전투복은 내어 입기 방식으로 착용 시간도 줄어들고 활동성도 좋아졌습니다. 또한 주머니를 사선형으로 만들어 물건을 넣고 꺼내기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장병들이 가장 편리하게 생각하는 점 중 하나는 바짓단 조임끈이 내장형이라는 것입니다. 기존 고무링을 따로 달아 바짓단을 말아 올리는 방식은 활동이 많은 훈련 시 고무링이 빠지기도 하고, 착용 시간도 오래 걸리는 등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형은 조임끈이 내장되어 잡아당기기만 하면 쉽게 바짓단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신형 전투복은 목 보호 또는 동계 보온을 위해 차이나 칼라 형태로 착용할 수도 있고, 벨크로가 붙어있어서 상황에 맞게 접거나 펴서 두 가지 형태로 착용이 가능합니다.

 

 

병사의 경우 훈련병을 포함한 이병 6개월(공군은 만 5개월), 일병 6개월, 상병 7개월 등 계급 간 진급 시기가 간부에 비해 짧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급하면 계급장도 바꿔줘야 하는데, 전투모와 방한복 상의 외피(약장 1개, 정장 2개), 전투복을 군장점 등에 가서 오버로크를 치려면 은근히 비용도 들고 불편합니다. 신형 전투복은 부대마크 및 계급장을 쉽게 탈부착할 수 있는 벨크로(찍찍이)를 적용하여 더욱 편리해졌습니다. 또한 진급하고 나면 기존에 사용하던 계급장을 후임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얼룩무늬 전투복에 비해 다방면에서 진화한 디지털 무늬 전투복.

육․해․공군 장병들의 전투력과 편의성 향상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멋까지 뛰어난 신형 전투복!! 좋은 옷을 받은 만큼 잘 입고 관리하는 국군 장병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민간인 분들께서는 베레모에 디지털 무늬 전투복을 입었다고 특수부대라고 오해하지 마세요~^^


모델 : 국군지휘통신사령부 70대대 육군상병 박진영, 공군일병 이대영

 

   <국방홍보원 블로그 어울림 기자단 : 국군지휘통신사령부 최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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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울림 국방홍보원

2012/05/14 10:56

우리가 주로 먹는 부대찌개의 유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대표음식 중 하나로서 부대찌개가 있다. 그런데 부대찌개의 유래를 찾아보면 6.25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어지는데 애석하게도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바로 6.25 한국전쟁으로 인한 굶주림이다.

 

6.25 한국전쟁이 치루는 동안 미군부대가 서울 방어를 위한 목적으로 경기도 북부 의정부일대에 주둔하게 되었다. 의정부는 6.25 한국전쟁 발발 이전 만해도 양주시의 작은 읍에 불과했지만 개전 이후 미군부대를 비롯해 우리 군부대가 대거 지역인근에 주둔하면서 휴전 이후에도 군사도시로서 성장하게 되었다.

 

 

바로 이곳 의정부의 미군부대에서 남은 음식으로 햄과 소시지 부대 밖으로 흘러 나오게 되었는데, 이를 인근 주민들이 얻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햄과 소시지를 처음 접한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자 김치와 고추장에 햄과 소시지에 넣고 물을 부어 끓여 한국식의 찌개를 만들어 먹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먹는 부대찌개의 시초이고, 미군 부대에서 먹다 남거나 몰래 빼낸 고기를 부대고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혹자는 부대찌개는 쓰레기를 만드는 사회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사회가 만나서 생겨난 음식이라고 한다. 미군은 음식물을 그냥 버렸는데,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는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상하지도 않은 음식을 버리는 것에 이해 할 수 없었을테니 말이다.

이렇게 버려진 음식을 주워다가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냈으니 그게 바로 부대찌개인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 때문에 한때 의정부에서는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 등지로 의정부찌개로의 개명을 추진하기도 했었지만 대명사로 잡게 된 연유 등으로 인하여 계속 부대찌개는 불리고 있다.


비록 아픈 과거 속에서 나온 것이지만, 부대찌개는 굶주림을 벗어나게 해주었고 맛의 측면에 있어서도 한국인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하여 의정부 일대에 부대찌개의 음식 맛 좋다고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부대찌개에 다양한 음식재료가 들어가면서 영양가도 높다는 입소문도 퍼져 많은 사람들이 의정부로 몰리기 시작하였다.

 


 

규모가 커지면서 1960년대에는 양주군청 옆 골목 일대에 처음으로 전문식당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가 조성이 되어졌다. 그 후 전국적으로 부대찌개라는 이름이 퍼져나가며 지금은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라면이 첨가되어지는 등 변형되기도 했지만 시큼한 김치에 소시지를 가득 넣은 그 기본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본 기자는 의정부로 직접 달려가 의정부 부대찌개의 맛을 느껴보았다. 밑반찬이라 해봤자 단무지와 김치가 전부이다. 그만큼 찌개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맛을 일단 보니 일반 식당에서 파는 부대찌개와는 다른 맛이었다. 좀 깊은 맛이 난다고 할까? 진하면서도 담백했다. 그런데 그 유명세에 비하면 솔직히 특별한 맛은 아닌 것 같지만 먹다보면 자꾸 국물에 손이 가는 마력이 있었다.

 

이 곳을 찾은 한수홍씨(서울 노원구, 53)는 아들이 의정부 일대에서 군 복무 중인데 외출을 통해 같이 맛있는 식사를 하게 되어 좋다고 하였다. 이렇듯 군대 간 가족의 면회 등의 이유로 의정부를 찾는 분들이나 교외로 나들이 가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다녀올 만한 곳인 것 같다.

 


 

의정부 부대찌개는 의정부 (구)터미널에서 도보로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라 하여 입간판이 있으니 찾기 어렵지는 않다. 더욱이 앞으로 의정부 경전철이 개통이 되면 중앙역을 통해 바로 접근이 가능해 보다 이곳을 찾기 쉽다고 한다.

 


 

한편, 의정부에서 탄생한 부대찌개의 맛과 멋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고 특히 음식문화 개선을 위해 관련 식당을 명가로 지정하는가 한편 의정부부대찌개 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2011년에 6회를 맞이하였다고 하며, 축제기간 동안 음식요금이 할인되어진다,

 


 

부대찌개의 배경을 살펴보면 어찌 보면 감추고 싶은 지난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정부시에서는 부대찌개 축제를 통해 의정부시의 가치를 높일 뿐 아니라 대표음식 브랜드 의정부 부대찌개를 지역 특산품으로서 활용하고 있다. 분명 부대찌개는 우리의 슬픈 역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서울 거리에서 부대찌개를 주문하여 더 이상 가난의 한이 아닌 그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먹거리로서 애용하고 있지만 그 유래를 한 번쯤 생각해보고 돌이켜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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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종근 기자 (국방홍보원 블로그 '어울림' 기자단)

 

Posted by 어울림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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