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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어려움속에 먹었던 수제비의 진실

한·중·일 별미서 전쟁의 고통·허기 달래는 한끼로


여름철 땀 뻘뻘 흘리며 먹는 수제비는 별미다. 이런 수제비에 대해 몇 가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수제비가 옛날 못살았던 시절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제비가 고급 요리인 시절도 있었다. 또 하나, 수제비를 우리 토속 음식으로 알고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에도 수제비가 있다. 한·중·일 수제비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전쟁의 아픔을 겪으며 먹었던 음식이고 동시에 전쟁의 고통을 이겨내는 데 일조한 음식이라는 점이다. 수제비는 가난한 사람들이 배고픔을 이겨내려고 먹었던 음식만은 아니었다. 근대 초기만 해도 별식으로 수제비를 먹었다. 조선요리학의 저자 홍선표가 1938년 발표한 글에도 수제비는 삼복의 별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는 “여름 중에도 삼복에 먹는 음식으로는 증편과 밀전병, 수제비라는 떡국이 있는데 여름철 더위를 물리치는 데 필요한 음식”이라며 “삼복의 복놀이 잔치에 수제비가 없으면 복놀이 음식이 아니되는 줄로 알고 누구나 다 수제비를 먹는다”고 적었다.

 

근대 초기 삼복 더위 물리치는 고급요리. 6·25전쟁 후 재료 바뀌며 서민음식으로

 

조선 시대 문헌도 비슷하다. 전통 수제비로 영롱발어(玲瓏撥魚), 또는 산약발어(山藥撥魚)라는 음식이 보인다. 다소 어려운 한자지만 발어(撥魚)란 물고기가 뒤섞이는 모습을 표현한 단어다. 떼어 넣은 밀가루 반죽이 끓는 물에 둥둥 떠서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물고기가 어우러져 헤엄치는 것 같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반죽한 메밀가루를 잘게 썬 쇠고기와 함께 숟가락으로 팔팔 끓는 물에 떼어 넣으면 수제비는 뜨고 고기는 가라앉는데 여기에 표고버섯·석이버섯을 넣고 소금·장·후추·식초로 간을 맞춰 먹는다고 했으니 지금 기준으로 봐도 고급이다.

 

8월, 패전의 상처 기억하며 ‘스이동’ 먹는 달.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식량난 겪으며 만들어

 

일본에도 수제비가 있다. 스이동(すいとん)이라고 하는데 얼핏 보기에 우리 수제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일본 수제비 역시 역사가 짧지 않아서 17세기 요리물어(料理物語)에 보이고, 19세기 수정만고(守貞만稿)를 비롯한 다양한 문헌에 수제비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칡가루에서부터 메밀가루, 밀가루까지 다양한 재료로 끓였지만 일본 상류층이 보는 요리책에 수록된 것을 감안하면 일본에서도 역시 수제비를 고급 음식으로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수제비지만 양식이 부족한 전쟁 때는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으로 변신한다. 물론 수제비 만드는 재료는 바뀐다. 전시 상황에 고급 재료를 쓸 수는 없다. 우리의 경우 해방 이후와 한국전쟁 전후 밀가루 수제비로 끼니를 때웠음은 모두 알고 있으니 더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일본은 8월이 수제비, 즉 스이동 먹는 달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6월이 되면 한국전쟁 체험 음식으로 주먹밥을 먹은 것처럼 일본에서는 패전의 어려움을 기억하는 의미에서 8월에 수제비를 먹는다. 일본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배를 전후해 조선과 타이완에서 수탈해 온 쌀 공급이 끊기면서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릴 때 수제비를 먹고 지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말기에 일본 사람들은 콩가루와 옥수숫가루, 수숫가루 혹은 가축의 사료로 쓰던 쌀겨를 혼합해 먹었다. 그나마 여유가 있으면 밀가루로 수제비를 빚었고 그것도 부족하면 물에 풀어 풀을 쑤어 먹었다고 한다. 채소 역시 모자라 고구마 잎이나 들의 풀 같은 평소에는 먹지 않던 것까지 넣어서 먹었고 된장·간장·소금도 부족했기에 제대로 양념도 하지 못했다. 바닷가 마을에서는 짠맛을 내려고 바닷물까지 넣었다고 한다.

 

원나라, 한족 반란 두려워 부엌칼까지 회수. 지배의 아픔 고스란히 담은 ‘도삭면’ 탄생

 

중국에는 수제비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이 많지만 그중 하나가 도삭면(刀削麵)이다. 수제비 같기도 하고 칼국수 같기도 한 음식인데 베개 크기로 반죽한 밀가루 덩어리를 어깨에 메고 한 손에 든 칼로 감자 껍질 벗기듯 쳐내면 밀반죽이 끓는 물 속으로 떨어져 국수가 된다. 이런 음식이 만들어진 데는 유래가 있다.

2차 대전 패전 후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며 시위하는 일본인

몽골의 원나라는 한족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집집에서 가지고 있던 금속이란 금속은 모두 거둬들였다. 심지어 음식을 만들 때 쓰는 부엌칼도 회수하고, 열 집이 한 개의 식칼을 공동으로 사용하게 했으며, 이것도 음식을 다 만든 후에는 거두어 몽골족이 보관했다. 어느 날 한 할머니가 국수를 만들어 먹으려고 밀가루 반죽을 했는데 반죽을 썰 칼을 다른 집에서 이미 가져간 상황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 보고 다른 집에 가서 가져오라고 시켰는데 이미 칼을 몽골 관청에 반납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낙심하고 돌아오다가 길바닥에서 얇은 쇳조각을 발견했고 그걸 주머니에 넣고 돌아와 밀반죽을 베어낸 것이 도삭면이 생겨난 유래다.

이렇게 수제비에는 전쟁에 패하면 고통은 고스란히 백성의 몫이라는 교훈이 들어 있다. 그런 만큼 승리는 리더의 의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