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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유일한 움직이는 병원부대, 국군병원열차

|그것이 알고 싶다| 국군병원열차

전방에서 후방까지 590Km 칙칙폭폭

 

국군병원열차가 부산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의무사는 전방지역의 환자를 후방지역으로 신속히 이동, 군 전투력 보존 및 복원에 기여하고 있다. 부대 제공

 

 

 

최근 경기도 수색역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얼핏 보니 탑승할 열차가 예전에 많이 타보던 무궁화호 열차 같았습니다. 스테인리스스틸 보디에 주황색이 칠해진 모습이 딱 그러했죠.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일반 열차와 다른 모습이 눈에 띕니다. 적십자 표시가 그려져 있고, 차량에는 각각 부산 대구 대전이라는 행선지가 적혀 있습니다. 열차 안에는 일반인은 없고 장병들만 있는데 간간이 목발을 쥐거나 다리에 깁스를 하고 침대에 편히 누워 있는 광경도 보입니다. 열차의 정체는 전군에서 유일하다는 아니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움직이는 병원부대, 바로 국군의무사령부 국군병원열차대에서 운행하는 병원열차입니다.


 

경산역에서 휠체어를 탄 장병이 내리고 있다.

 

간호장교 최민선(간사 50기) 대위와 군의관 백석호(군의 44기) 대위가 차트를 들고 일어섭니다. 회진은 매시 정각마다 이뤄집니다. 맨 앞의 차량부터 시작해서 한 명씩 환자의 상태와 이상 유무 등을 확인합니다. 열차에 탑승하는 환자는 평균 70여 명. 골절 등 정형외과 환자가 70∼80%로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나머지 20∼30%는 신경외과 환자입니다. 대개 3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하다고 진단받은 환자들이 후방병원으로 이송되는데 이는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환자들을 위한 전방병원의 수용 능력을 적절히 유지하고 환자를 더욱 안정적으로 치료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고 보니 환자들을 위해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들이 엿보입니다. 새마을호 일반열차를 개조해 진료실과 환자를 간호할 수 있는 병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겉모양은 무궁화급이지만 내부시설은 새마을급입니다. 침대칸에는 차임벨이 있어 누르면 도와줄 장병들이 즉각 달려옵니다. 의자를 마주 보게 해 편하게 다리를 쭉 뻗을 수도 있습니다. 신간 서적도 비치돼 있으며 최신 영화도 상영해 주고 음악도 가는 내내 계속 틀어줍니다. 별도의 음식물을 보관할 수 있는 대형냉장고도 있습니다. 모두가 장시간 이동으로 발생하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최소화하기 위한 따뜻한 관심입니다.

 

국군병원열차 침대칸의 모습.

 

진료실은 어떨까요. 산소공급기와 심장제세동기를 포함해 30여 개의 의료 장비를 갖추고 환자를 맞고 있습니다. 천식이나 긴급 심장질환자 응급처치, 간단한 외과 봉합 수술은 언제든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환자들이 편하고 안정적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준비해야 할 것이 많겠죠. 열차의 운행은 매월 1회 3일간에 걸쳐 이뤄집니다. 우선 1일 차는 수색역에서 열차를 점검하고 실어야 할 품목들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2일 차는 실제 환자들을 태우고 운행합니다. 새벽에 수색역을 출발해 춘천역에서는 홍천·춘천병원의 환자들을, 퇴계원역에서는 고양·양주·일동병원 환자를, 서빙고역에서는 수도·서울지구병원의 환자들을 탑승시킨 뒤 다시 수색역으로 돌아옵니다. 이어 오후에 신탄진역(대전병원), 경산역(대구병원), 해운대역(부산병원)에서의 정차를 거쳐 부산역에 이르면서 기나긴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이날 달린 거리만도 590여km. 그리고 3일 차에 수색역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2박3일간의 일정을 끝냅니다. 광주행(함평병원) 환자 차량은 수색역에서 따로 분리해 무궁화 열차에 연결, 목적지로 향하는 것만 다를 뿐 동일한 일정으로 진행됩니다.
 

 

 

회진 중인 군의관과 간호장교가 병원열차 침대칸에서 환자의 상태에 대해 확인하고 있다.

 

전방지역에서 후방지역으로, 또는 후방지역 병원 간 이송이 병원열차의 주된 활동이지만 때로는 다른 임무를 맡기도 합니다. 특히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정부가 국군대전병원을 메르스 전담병원으로 지정하자 불과 2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입원했던 환자들을 대구·부산병원으로 긴급 후송, 국가위기를 극복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입니다. 이는 한 달 전에 만들어지는 매우 빽빽한 전국 열차들의 일정을 철도공사 등 유관기관들의 협조를 받아가며 이뤄낸 성과이기에 그 의미가 큽니다. 평상시의 철저한 훈련과 준비, 계획 수립이 이 군사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요인이기도 합니다.

한참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덧 해운대역에 도착했습니다. 다른 일정을 위해 역을 나서는데 문득 열차 운행을 책임지고 있는 병원열차대장 서재기(3사 25기) 중령의 말이 떠오르며 가슴에 새겨집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당신! 우리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당신은 최상의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국군병원열차는 1950년 12월 10일 제1철도후송대로 서울에서 창설됐다. 월 2회 운행되다가 지난해 5월 1일부터 월 1회로 변경됐다. 대신 버스를 이용한 육로수송이 확대됐다. 열차는 8∼9억 원에 이르는 지휘차량을 비롯해 중환자병실차·일반병실차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후송 대상자들은 의무사령부에서 환자들의 병명과 전국에 산재한 각군 병원의 수용 능력 등을 파악, 종합해 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