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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년]˝독일, 진심 어린 사죄·반성으로 국제 신뢰 회복”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가 말하는 ‘상생·화합, 그리고 통일
 

피해 보상 등 실천 통해 반성의 진정성 끝없이 증명 

화해는 가해국과 피해국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세스

 

 

 

주한 독일대사관에서 국방일보와 인터뷰한 롤프 마파엘 대사가 독일의 통일 경험과 대한민국의 미래 과제에 대한 조언을 들려주고 있다.


 

 

 

주한 독일대사관에는 양국 우호를 상징하는 한국·독일 두 나라의 국기와 함께 유럽연합(EU) 깃발이 배치돼 있다.

 

 

 

 

   통일의 염원을 싣고 1만4400㎞를 달린 ‘유라시아 친선특급’. 그 최종 목적지는 독일 베를린이었다. 상생과 화합의 길로 통일과 국가 발전을 이룬 독일은 대장정의 피날레를 장식할 만한 상징성이 있는 나라다.

 통일 독일의 발전상은 모든 나라에 완벽한 정답지일 수는 없다. 그러나 광복·분단 70년을 맞은 대한민국에 훌륭한 참고서임은 분명하다. 국방일보는 광복 70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미래와 과제를 조망하고자 지난달 주한 독일대사관을 찾았다. 국방일보와 만난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는 대한민국의 상생·화합, 그리고 통일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진심 어린 반성이 신뢰로…신뢰는 국가 발전으로

 “독일의 사죄와 반성은 1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00년을 이어오면서 그 과오가 조금씩 청산돼 가는 것입니다.”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는 독일의 반성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사실 독일은 이미 과거사 악몽에서 벗어나 국제적 리더십을 회복했다. 세계대전 당시 피해국들이 속한 유럽연합(EU)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여전히 독일의 사죄와 반성은 계속되고 있다.

 마파엘 대사는 “전범국으로서 과거 청산을 위한 노력은 현재 독일이 가진 리더십의 이유라기보다 그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즉 과거사 청산이 현재의 국가 리더십으로 직결된 것이 아니라, 이웃 국가와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데 먼저 필요한 단계였다는 설명이다.

 대사는 “국제사회가 독일의 통일을 수용하는 것에도 신뢰가 중요했다”며 “물론 통일 이후에도 지난 과오를 극복하고 이웃 국가의 신뢰를 받기 위한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독일의 화해 노력에 대해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이 들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작년 7월 중국에 방문한 메르켈 총리가 과거사 반성에 대해 “고통스러웠지만 옳았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화해는 함께 만드는 것…피해자의 민감한 부분 고려돼야

 잘못을 인정하고 화합과 상생의 길을 도모한 독일의 선택은 여전히 침략역사에 발목을 잡혀 질타받는 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사죄와 화해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마파엘 대사는 “모든 피해국과의 화해는 힘들었지만, 특히 폴란드와의 화해가 독일에 큰 도전이었다”며 “독일로부터 수차례 침공받았던 폴란드이기에 나치에 의해 많은 희생을 겪었다”라고 설명했다.

 마파엘 대사는 “화해는 항상 가해국과 피해국 양쪽이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세스”라는 조언을 전했다. “독일의 노력만큼이나 폴란드의 열린 자세가 있었기에 화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와 폴란드는 피해국이지만, 독일에 먼저 손을 내밀고 함께 새 미래를 만들어갈 준비가 돼 있었다”며 “이는 독일에 큰 행운이었다”고 밝혔다.

 오늘날 일본은 한국, 중국 등 침략 피해국과의 화해나 리더십 회복에 독일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마파엘 대사는 “독일은 일본의 국제적 역할에 대해 존중하지만, 동아시아에서 과거사에 대한 화해가 아직 성공적이지 못한 부분은 슬프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전했다. 또한 “피해국이 열린 자세를 가지는 것만큼이나 화해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민감한 부분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죄는 말이 아닌 실천…국제문제 해결에 동참

 독일의 과거사 청산 노력은 단순한 사죄에만 머물지 않았다. 독일은 실천을 통해 반성의 진정성을 끝없이 증명했다. 실제로 독일은 1964년까지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등 피해국과 개별 협정을 맺고 피해를 보상했다. 통일 이후에는 폴란드 등 동유럽 나치 피해국과 화해기금을 만들어 보상을 이어갔다

 독일이 고수하고 있는 원리원칙에 입각한 군사활동 역시 다시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실천이다. 마파엘 대사는 독일 군대에 대해 “독일 말로 의회군대라고 부를 정도로 강한 통제를 받는다”며 “독일이 나토(NATO) 역외로 군대를 파병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독일 국회가 승인한 사안일 것, 둘째는 나토·EU 등 집단체제 안에서 이뤄지는 활동일 것”이다. 대사는 “이 전제조건은 독일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절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정부 이후 자위대 활동 범위를 확대하는 등 우경화 노선을 강화하고 있는 일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마파엘 대사는 “국제문제 해결에서 군사적 참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치적 참여”임을 강조했다. “폭력과 갈등이 발생하기 전 위기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정치적 참여”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어서 “독일은 특히 분쟁지역에서 민간부문 재건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이 부문에서 한국과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꾸준한 교류와 일관된 통일 의지, 남북 벽 허물 것”

 

인구 7500만 명 통일한국 독일처럼 경제 강국 가능

군 복무 힘들지만 인성·리더십 개발 계기될 것

 

 

 

마파엘 대사가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국방일보를 읽고 있다.

 


  남북 통일 반드시 필요해…이웃 국가에도 이득

 임기가 연장돼 주한 대사로서 4년째를 맞은 마파엘 대사는 “한반도의 통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 이유에 대해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에게 같은 안정과 평화가 주어져 있지 않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북한 주민에게도 안정과 평화가 보장돼야 한반도의 장기적인 안보와 번영이 지켜질 수 있고, 결과적으로 현재처럼 분리된 체계가 종식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대사는 “남북한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가 주어지길 간절히 바란다”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는 희망을 전했다.

 대사는 “통일이 한국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남북이 통일되면 독일 인구와 비슷한 7500만 명 수준이 된다”며 “통일한국은 통일의 과도기만 극복하면 독일과 같은 경제력을 충분히 이룩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특히 마파엘 대사는 “한반도 통일 효과는 남북한을 넘어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화 요인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남북통일은 모든 이웃 국가에도 이익이 될 것이며,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이런 부분을 주변국에 잘 인식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관된 의지가 통일 해법…대한민국 장병 격려

 현재 문을 걸어 잠그고 군사도발을 일삼는 북한과 대화조차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마파엘 대사는 “꾸준한 교류정책과 일관된 통일 의지만이 남북의 벽을 허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북한은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교류에 대한 의지를 일관되게 끌고 나가면 지금 같은 정치적인 시기가 어느 정도 흐른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분명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사는 통일의 핵심이 사람들의 행복에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한국은 사회적 긴장감과 불안감이 높은 편”이라고 지적하며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분단이 이를 유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위협이 바로 옆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한국사회에 불필요한 긴장과 불안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통일은 북한 주민의 인권 회복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의 행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대사의 의견이다.

 마파엘 대사는 마지막으로 분단상황에서 조국을 지키는 대한민국 장병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적십자에서 10년 동안 대체복무한 자신의 말이 부디 믿을 만하길 바란다며 다음과 같이 전했다.

 “대한민국 군인들은 국가 안보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가족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도 군 복무는 소중한 것임을 기억하세요. 물론 2년이라는 군 복무 기간은 굉장히 힘든 시간입니다만 군 생활을 통해 공동체 생활도 하고 인성과 리더십을 개발하는 계기가 될 거라 믿습니다.”

  경제비용 최소화·이질화된 문화 극복…통일한국 위한 ‘필수 준비물’

 

 무너진 베를린 장벽은 통일의 상징이다. 그러나 경계선만 사라진다고 통일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진정한 화합과 상생에는 더 많은 노력과 기회비용이 수반된다. 독일 역시 통일 과정에서 수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독일 통일 과정을 분야별로 돌아보며 통일 대한민국이 준비해야 할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보자.

▲정치

 마파엘 대사는 “동독 출신 대통령과 총리가 나왔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통일은 완성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사적 대립이 여전한 현 상황에서 통일한국의 정치적 화합을 거론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또 하나의 난제는 주변국과의 외교적 문제다. 통일은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들이 비협조적인 자세로 나온다면 통일 과정은 더욱 험난해진다. 우리는 독일이 이웃 국가에서 신뢰를 쌓아 통일을 이룰 수 있었음에 주목하고, 통일한국이 지역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는 나라로 거듭날 것임을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

▲경제

 통일 이후 철의 장막이 사라진 동독은 3년 만에 경제적 붕괴를 맞았다. 동독 근로자 중 80% 이상이 실업자가 됐고, 서독은 동독의 경제 재건을 위해 15년 동안 1조4000억 유로(약 1750조 원)에 달하는 통일비용을 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파엘 대사는 “서독은 동독 주민의 사회복지제도 편입을 위해 특히 많은 재정적 부담을 안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남북의 경제 격차는 통일 당시 동서독의 격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통일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발전의 원동력임은 분명하나, 그 과도기를 이겨낼 각오와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할 사전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

 통일 이후 25년이 흐른 지금도 동서독 주민이 선호하는 신문은 다르다고 한다. 이렇듯 같은 민족일지라도 오랜 기간 단절된 사회가 빠르게 하나가 되긴 어렵다. 독일은 사회 통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동서독 주민의 경제적 불균형과 불평등 문제, 문화적 차이 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사실 동서독은 통일 이전에도 왕래나 문화적 교류가 가능했다. 남북은 상황이 다르다. 극히 일부의 비공식적 루트를 제외하고 서로 제대로 알기 어렵다. 분단 70년이라는 장기적인 단절이 만든 이질화된 언어와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내적 통합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군사

 마파엘 대사는 지난달 열린 한국국방연구원(KIDA) 포럼에서 “군사적 통합이야말로 독일 통일 과정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임을 강조했다. 그는 “예전에는 적군이었던 군인들이 이해와 용서가 오히려 더 빨랐다”며 “군사통합이 가장 빠르고 갈등 없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동독 군인들에 대한 명예로운 은퇴 기회 제공, 사회적응 교육과 재취업 지원 등이 그 배경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독일은 동서독 간 내전 없이 통일을 이뤘다는 점에서 우리와 차이가 있다. 우리는 통일 이후 북한군에 대한 처우, 재편, 해산 및 재고용 문제와 함께 동족상잔의 비극이 남긴 갈등의 잠재요소까지 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