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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년] 표지 하나 없이 철거위기.. 중국 베이징 '이육사 순국지'

모진 고문 속 마흔살에 옥사…흉가처럼 방치

항일운동 초기중심지 베이징, 관리 손길 시급

 

 

이육사 순국지’로 알려진 옛 일본군 헌병대 건물.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베이징의 명소 왕푸징(王府井)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은 오랫동안 방치돼 그야말로 흉가 같았다. 연합뉴스

 

 

 식민지배에 항거하며 옥사했던 단재 신채호(1880∼1936)와 이육사(1904∼1944)를 비롯해 우당 이회영(1867∼1932), 김산이라는 가명으로 더욱 유명한 장지락(1905∼1938) 등 많은 투사가 이곳을 활동거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 흔적은 광복 70년이 흐른 오늘날 찾아보기 쉽지 않게 됐다. 보존과 관리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았던 탓이다.

 

 ‘이육사 순국지’로 알려진 옛 일본군 헌병대 건물은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베이징의 명소 왕푸징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다. 최근 이곳은 오랫동안 방치돼 그야말로 흉가처럼 변했다. 건물 밖이나 안에도 아무런 표지가 없다. 1925년 스물한 살의 나이로 의열단에 가입해 일생을 오롯이 조국독립에 바친 이육사는 1943년 체포, 베이징으로 이송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는 광복을 앞둔 1944년 마흔 살의 나이로 이곳에서 옥사했다.

 

   옛 일본군 헌병대 건물은 현재 일부 공간이 개조돼 주거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의 상당 부분은 오래전에 폐쇄된 상태다. 중국의 보존조치가 없다면 조만간 철거될 운명을 맞을 우려가 크다. 이곳에 거주하는 한 중국인은 “이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다. 한국의 리루스(李陸史)가 여기서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베이징에서 그나마 흔적이나 찾아볼 수 있는 주요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는 이곳을 포함해 몇 곳에 불과하다. 신채호·이회영 등이 해외 독립운동세력을 통괄하는 군사 통일기관 설치문제를 협의했던 ‘군사통일주비회’ 개최지, 베이징 거주 한인 청년들이 신채호를 단장으로 추대해 조직한 ‘대한독립청년단’ 본부 등의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군사통일주비회’ 개최지가 있었다는 베이징 동물원과 ‘대한독립청년단’ 본부가 존재했다는 샤오스차오 후퉁에는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베이징은 끊임없이 추진된 재개발 속에 천지개벽을 거듭했다. 독립투사들의 흔적 대부분은 재개발과 함께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린 셈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중국 지역에 대한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보호는 임시정부 청사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며 “베이징은 상하이와 함께 항일독립운동 초기 중심지였음에도 보존 및 관리는 소홀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