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 진동리전투
'유엔군 첫 반격작전 승리' 큰 의미
한국 해병대, 北 6사단 공격 혁혁한 전공
마산 진동리전투는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적의 예봉을 꺾고 부산 진출을 시도하던 북한군을 저지한 전투다. 이때 국군 해병대는 북한군 6사단의 정찰대대를 궤멸시키는 혁혁한 전공을 세워 전 장병이 1계급 특진의 영예를 누렸다.
낙동강 공방전이 가열되기 시작한 1950년 7월 말 북한군 6사단은 마산을 통해 부산을 점령한다는 계획 아래 호남 지역에서 대우회기동을 개시했다. 북한군 6사단은 빠르게 진주를 점령하고 마산으로 향했다. 이에 미 8군 워커 중장은 대규모 반격 작전을 계획했다. 미 육군 25사단과 미 제5연대 지구 전투사령부에 배속된 한국 해병대의 김성은 부대와 육군의 민기석 부대 등을 동원해 저지 작전에 나섰다.
진동리전투는 유엔군의 첫 반격작전 승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약 2주의 전투 기간 동안 진동리 근처 고지의 주인이 19번이나 바뀔 정도로 격렬한 전투였다. 하지만 이곳을 지키면서 북한의 서남쪽을 통한 부산 진입 전략이 좌절됐고 이후 낙동간 방어선을 지킬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진동리전투의 승리가 있었기에 9월 인천상륙작전 성공이 가능했다는 평가도 있다.
■ 전략도서 확보 작전
적 배후 위협, 아군의 해군 활동 보장
국군과 유엔군은 1951년 1월 하순부터 다시 북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38도선 북방의 전략도서 확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전략도서 확보 작전은 동·서해안의 교통 요충지를 장악함으로써 아군 해군의 활동을 보장하는 게 목표였다. 해병대는 상륙부대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 이 작전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51년 2월 14일. 해병대 독립 제42중대가 원산 앞 여도에 상륙했다. 영흥만의 관문인 여도 점령은 아군 해군이 소해작전·함포사격·항공지원 등 제반 작전을 원활히 전개하는 디딤돌이 됐다. 해병대는 이어 신도·소도·대도·황토도 등 원산 근해 도서를 장악했다.
아군은 동해안 교통 요충지인 원산항 봉쇄를 통해 적의 기뢰 부설을 방지하고, 육상 병참선을 차단했다. 또 방어를 위한 적 병력 분산, 아군 정보수집 및 유격활동 근거지 마련, 우군 항공기·조종사 탐색·구조작전 거점 확보라는 열매를 맺었다.
51년 3월 28일. 서해안 도서 확보 임무를 띤 해병대 제41중대가 교동도·백령도·석도 점령을 위해 진해를 출항했다. 이들은 4월 2일 교동도에 상륙을 개시했으며, 5월 7일 석도 상륙을 완수함으로써 목표 도서를 완전히 점령했다.
아군이 동·서해안의 도서를 점령하고, 배후를 위협하자 적은 이를 탈취하기 위해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해병대는 소수의 병력으로 적의 공격을 번번이 격퇴해 용맹성을 과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양도 방어전투다.
51년 8월 28일. 해병대 독립43중대는 함경북도 명천에서 3.5㎞떨어진 양도를 점령한 후 적 후방을 교란했다.
아군이 양도를 중심으로 탐색·봉쇄작전을 지속하자 적은 52년 2월 20일 새벽 1개 대대 병력과 발동선 2척, 범선 52척을 투입해 기습상륙을 시도했다.
해병대는 유인작전을 병행하면서 참호(塹壕)에 포진했다. 날이 밝자 해병대는 일제히 공격을 개시해 기습부대장을 포함한 적 83명을 사살했다. 또 익사 73명, 생포 6명, 발동선 2척 격침, 범선 13척 격침이라는 전공을 거뒀다.
해병대는 정전협정 때까지 1개 연대 규모 병력이 전략도서 확보작전 임무를 수행했다. 이 같은 활약은 북한과 인접한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등 서해 5도를 아군이 통제하는 밑거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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