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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체계/육상무기

[이세환 기자의 밀친] 저격수 이야기(3)


[이세환기자의 밀리터리 친해지기]

저격수 이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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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당시의 막간극에서도 저격수는 전장에서 죽음의 사신이라는 것이 또 다시 입증되었다.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한 직후,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했으나, 북구의 추운 날씨와 핀란드 저격수에 의해 막심한 피해를 입게 된다. 특히 불과 몇 명의 저격수에 의해 소련군 부대 전체가 정군하는 일은 비일비재 했으며, 그대로 하루 밤만 지나도 저격수 때문에 불을 피운다던지 하는 난방을 할 수 없었던 소련군은 동사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결국 소련은 꼴사나운 모습으로 서둘러 핀란드 전쟁을 끝내버린다.

 

동사한 소련군들의 모습.이렇게 저격수로 인해 하루 밤만

숲속에 가둬두면 대부분의 소련군이 동사하곤 했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저격은 다시 한 번 전장에서 꽃피게 된다. 저격이란 방어하는 입장에서 아주 요긴한 방법이다. 독일군의 전격전 앞에 허무하게 무너지던 소련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사활을 건 방어전을 펼치게 되고, 여기서 양측의 저격수들은 실로 피비린내 나는 사투를 벌이게 된다. 이 대결은 영화 「Enemy at the Gate」에서 비교적 잘 묘사되었다. 소련군은 기존의 볼트액션식 소총뿐만 아니라 반자동 소총도 저격에 사용하였으며, 이 개념은 후에 현대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2차 대전 당시 소련군의 SVT-40 반자동 소총. 4배율 스코프가 장착되어 있다.

반자동 저격총의 개념은 훗날 드라구노프 저격총에서 꽃이 핀다.

 

만약 저격수가 포로로 잡힌다면 가혹한 고문 끝에 즉결처형 되는 것이 불문율이었을 정도로 저격수는 공포의 존재였다. 전쟁이 끝나고 저격수의 덕을 톡톡히 본 소련은 일반 보병 편제에까지 저격수를 배치하였고, 이에 적합한 장비를 개발함과 아울러 위성국의 보병 편제에도 저격수의 배치를 적극 독려하게 된다. 6.25 전쟁당시 북한군은 국군에 비해 훨씬 제대로 된 저격수 편제를 갖추고 있었고, 이 전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영화「Enemy at the Gate」의 주인공

바실리 자이체프의 실제 모습.

영화보단 훨씬 후덕한 이미지이다.

 

현대전으로 넘어오면서 저격은 시야가 제한된 곳, 특히 정글이나 시가전에서도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단 한명의 저격수가 부대 전체의 발을 묶을 수도 있었고, 저격수에 의한 피해는 군의 사기를 급격히 떨어뜨릴뿐더러, 전장공포증까지 유발하기 충분하다. 베트남전에서 베트콩의 저격을 받은 어느 미군 부대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끝에, 인근 마을을 통째로 불살라버리는 불상사를 저지르기도 했다.

  

베트남에서 미군 스나이퍼 훈련모습.

베트콩이나 월맹군 스나이퍼를 사냥하는 헌터킬러 역할을 주로 수행했다.

 

또한 1992년 유고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 저격수로 인해 사라예보 시민들은 지옥의 공포를 맛보았고, 이른바 사라예보의 ‘저격수 거리’에서는 무수한 민간인들이 저격으로 희생되었다.
따라서 적 저격수를 제거하기 위해 포병의 지원을 받는다던가, 탱크의 엄호를 받는다던가하는 일은 현대전에서 이제 아주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저격수를 제거하기 위해 공군력을 동원하는 일도 이제는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었다. 특히 현대전의 경험이 풍부한 이스라엘군은 탱크를 이용한 적 저격수 제거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유고내전 당시 사라예보 저격수 거리에서 프랑스 평화유지군이 스코프를

장착한 FAMAS를 겨누고 있다. 그 뒤로는 한 여성이 다급하게 장갑차 뒤로

숨고 있다. 이 저격수의 거리에서 수많은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은바 있다.

 

이스라엘군의 메르카바 전차를 자세히 보면 포신 바로 위에 12.7mm 기관총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시가전을 거치면서 저격수의 공포를 체험한

이스라엘군은 포신 마운트 위에 12.7mm 기관총을 설치한 뒤 주포의 조준경을 통해

단발 모드로 상대편 저격수를 제거하는 방법을 즐겨 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