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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체계/육상무기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친해지기] 특수부대 총기 발달사 ①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친해지기] 


특수부대 총기 발달사 ①

 


 

영화에서 보는 특수부대는 스페셜리스트 들이다. 실력, 외모, 복장뿐만 아니라 무기 역시 스페셜 하다. 뭔가 정규군 병사들하고는 그 분위기 자체가 사뭇 다른데, 실제로도 특수부대 장비는 특수작전에 맞게 특화되어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 물건들이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 1월, 여명작전이 성공하면서 작전을 성공시킨 UDT대원들에게 찬사가 쏟아졌고, 구출작전 상황이 언론에 자세하게 소개되면서 특히 UDT 구출 팀이 사용한 총기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아무래도 일반 부대가 쓰는 총기와는 그 모양새나 쓰임새가 크게 달랐기 때문인데, 이 기회에 과거 특수부대 총기의 태동기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을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여러분들께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1차 세계대전과 특수부대의 총기



냉병기를 몰아낸 열병기가 본격적으로 전장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자, 보병들의 개인 화기인 소총은 사용이 아주 불편했던 머스킷 소총에서 탄피를 사용하는 단발식 소총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급기야 19세기 후반쯤 되면 볼트액션식의 5연발 소총이 서서히 보병 화기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 보병의 입장에서 보면 원거리의 적들에게 5번 연속해서 사격을 가 할 수 있다는 것에 분명 크게 만족하였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참호의 한 컷. 참고로 곳곳에 널 부러져 있는 병사들은 시체가 아니라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당시 참호전을 수행하던 보병들의 사정은 극도로 열악해서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병사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고,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병사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습기가 많은 참호는 병사들의 건강을 급속히 갉아 먹었는데 반해, 고급 지휘관들은 후방의 쾌적하고 안전한 곳에서 와인을 즐기며 마치 워 게임을 하듯 작전을 펼쳤다. 이런 지휘관들에게 병사들의 죽음은 그저 서류 상 사망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에 불과했다. (사진제공 : 필자)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참호의 한 컷. 참고로 곳곳에 널 부러져 있는 병사들은 시체가 아니라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당시 참호전을 수행하던 보병들의 사정은 극도로 열악해서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병사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고,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병사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습기가 많은 참호는 병사들의 건강을 급속히 갉아 먹었는데 반해, 고급 지휘관들은 후방의 쾌적하고 안전한 곳에서 와인을 즐기며 마치 워 게임을 하듯 작전을 펼쳤다. 이런 지휘관들에게 병사들의 죽음은 그저 서류 상 사망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에 불과했다. (사진제공 : 필자)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모든 상황이 바뀌고 말았다. 이른바 악마의 삼형제 - 기관총, 철조망, 참호 -가 등장하자 전장에서 보병들은 속절없이 희생당하기 시작했다. 전차 같은 돌파수단이 없었던 당시에는 적의 참호로 돌격하던 보병들이 어쩔 수 없이 철조망 앞에서 주춤하기 마련이고, 이 타이밍에 참호에 숨어있던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하면 학살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기관총과 철조망 덕분에 보병들은 적의 참호에 다가가기가 무척 힘들었고, 설사 적의 참호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1m가 넘는 긴 볼트액션 식 소총 때문에 참호안의 적을 소탕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좁은 참호 안에서 키만큼이나 긴 소총을 휘두른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고, 더군다나 볼트액션 식 소총의 한계로 인해 참호에 밀집해 있는 다수의 적에 대한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 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주력 소총 Gew 98. 5연발 볼트액션 소총모델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의 소총이다. 전장 1.25m로 착검을 할 경우 어지간한 독일군 병사의 키만큼 길었다. 이런 긴 소총을 참호에서 사용하기란 대단히 불편했을 것이다. (사진제공 : 필자)




사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보병이 휴대할 수 있는 경기관총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이 경기관총이란 물건은 아예 소총만큼 긴 건 둘째 치고 무거운 경우가 많아 참호 소탕전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게다가 전장에서의 신뢰성까지 극악이어서 경기관총에 목숨을 맡기고 적의 참호로 뛰어들 용기를 가진 병사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반자동 사격이 가능한 권총이 편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독일군은 포병용 루거 P-08에 32연발 드럼탄창을 끼워 사용하기도 했으나, 루거 자체가 워낙 섬세한 권총이다 보니 거친 전장의 환경에서는 신뢰성이 좋지 못했고, 아무리 반자동 사격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다수의 적에 대한 제압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왼쪽사진)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의 소샤(Chauchat) 경기관총. 길이도 길이(1.14m) 이거니와 무게 또한 만만치 않아서(9kg이 넘었다!) 참호 소탕전은 꿈도 꾸지 못했다. (오른쪽 사진) 우아한 권총의 대명사 루거 P-08. 하지만 전장에서의 신뢰성은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진은 32발 드럼탄창 장착 형. (사진제공 : 필자)





제원


소샤(Chauchat)
탄약 8×50mm / 급탄 20발 탄창 / 작동방식 가스작동식 / 전장 1,143mm / 중량 9.07kg / 발사속도 분당 240발 / 유효사거리 200m


루거 P-08
탄약 9×19mm 파라블럼 외 / 작동방식 토글액션, 쇼트 리코일 / 전장 222mm / 중량 871g / 유효사거리 50m





따라서 권총보다는 크고 신뢰성이 있지만, 소총보다는 가볍고 짧으며 제압효과가 뛰어난 개인 화기의 필요성이 대두 되었다. 하지만 당시 기술로서는 소총탄을 자동으로 발사하면서 크기가 작은 화기를 만들 기술이 부족했다. 여기서 어쩔 수 없는 타협점이 나온다. 즉 위력은 좋으나 반동과 제작이 부담스러운 소총탄 대신, 반동걱정 없고 상대적으로 제작이 용이한 권총탄을 자동으로 사격 할 수 있는 화기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는 독일에서 먼저 현실화 되었다. 




전쟁 막바지에 독일은 9mm 파라블럼 권총탄을 사용하는 베르그만 MP-18 기관단총(Bergmann Sub Machine Gun : SMG)을 개발해냈고, MP-18은 최전선에서 참호전을 전문으로 하는 스토스트루펜(2차 대전에서 슈투름트루펜으로 발전)이라는 특수부대들에게 지급되어서 참호 침투작전들에 요긴하게 쓰였다. 스토스트루펜은 전장경험과 용기, 전장적응력이 뛰어난 병사들을 가려 뽑은 최초의 특수부대였다. 일단 참호가 돌파되면 그 돌파구로 스토스트루펜이 뛰어들었고, 시커먼 개스마스크를 쓰고 M-18을 휘두르는 이들의 존재는 연합군 병사들에게 공포의 사신과도 같았다. 



MP-18을 들고 포즈를 취한 1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 병사. MP-18은 최초의 실용화 된 기관단총으로 이후 기관단총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사진제공 : 필자)





제원


MP-18

탄약 9×19mm / 급탄 32발 탄창 / 작동방식 Open Bolt Blowback / 전장 832mm / 중량 4.18kg / 발사속도 분당 500발 / 유효사거리 200m







재미있는 것은 미군의 경우 참호전에서는 산탄총을 주로 사용했는데, 독일군은 산탄총을, 미군은 MP-18을 비인도적인 무기라고 서로들 비난했다. 필자가 보기엔 다 거기서 거기다. 전쟁에서 인도적인 것을 찾는다? 그것도 1차 대전에서? 1차 대전에서 연합군, 독일군을 막론하고 보병운용의 실태를 살펴보면 이건 뭐 파리 목숨이 따로 없다. 전투가 개시되면 양측 모두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수만의 희생자가 나오는 것은 일상 다반사였고, 이러한 참상에도 불구하고 양측 지휘부는 마치 워게임을 하듯 후방의 안전한 지휘부에서 무감각한 지휘를 일삼았다.